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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8집 [Atomos]
서교수  2010-03-04 21:52:22, 조회 : 1,029, 추천 : 176

                          
평점: 10점




윤종신의 [영계백숙]이 동방신기나 샤이니 등 아이돌 그룹의 뮤비에 합성되어 웹 상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현재 상황은,얼핏 보면 '무한도전'이라는 TV프로그램의 인기를 등에 업은 덕으로 단순하게 생각되기 쉽다.그런데 절묘한 싱크로율을 보이는 이 조합의 영상들 속에는 상당히 단순하지만 은근히 쉽게 지나칠만한 음악적 접점이 숨어있다.쉽게 말해,윤종신이 대중적인 작법으로 단순하게 만든 [영계백숙]은 국내 주류 음악 시장을 주름잡아온 트랙들(이를테면 합성 시리즈에 등장하는 동방신기나 샤이니,2PM,소녀시대 등의 곡들)과 비교할 때 노트의 배치와 구성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영계백숙 오오오오/영계백숙 오오오오/
그의 튼튼한 다리를 믿어/그의 거치른 피부를 믿어


Juliette! 영혼을 바칠께요/Juliette! 제발 날 받아 줘요/
Juliette! 달콤히 좀 더 달콤하게/속삭여 나의 세레나데


그래요 난 널 사랑해 언제나 믿어/꿈도 열정도 다 주고 싶어/
난 그대 소원을 이뤄주고 싶은/행운의 여신/
소원을 말해봐! (I`m Genie for you, boy!)/소원을 말해봐! (I`m Genie for your wish)/
소원을 말해봐! (I`m Genie for your dream)/내게만 말해봐! (I`m Genie for your world)



눈으로 쉽게 알 수 있듯이,국내 주류 시장의 곡들은 대부분 리듬에 관계없이 각 소절들이 모인 형태가 2*n의 안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노랫말도 가사 문학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생각하자면 이런 곡들은 박자를 기준으로 평시조의 3.4조 변형률을 사용한다고도 볼 수 있겠는데,우선 수미쌍관을 유지하면서 전체적으로 통일감과 안정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한 장점이다.또 요즘 후크송 제작 추세에서는 각 소절의 앞머리에 중독성 유발을 위한 똑같은 단어를 배치하는 탓에 앞서 언급한 장점들은 더욱 견고해지고 가사 쓰기도 더 쉬워진다.그런데 서태지 8집의 수록곡들은 한국 가요의 이러한 구조적인 클리셰들을 파격적으로 깨부수며 등장한다.


천상에서 그대가 눈뜰 때/좋은 화음처럼 이 비가 그칠 때/까진 All night long/All night long 이 밤에/
이 엄숙한 비겁자의 하늘과/나의 섬들 사이에


높게 올려 쌓은 담/이 단절 속의 난 나의/꿈에 거짓을 고한 이후/
그 향긋했던 약속의/이 도피처로 돌아온 나는/단 하루도 편히 잠들지 못했는걸



눈으로만 봐도 확연히 드러나는 이러한 불규칙한 마디 배열은 지독하다 싶을 만큼 잘게 쪼개놓은 비트와 섞여 예측불허한 즐거움을 선사한다.이것이 서태지가 내놓은 '네이쳐 파운드'를 쫓아가는 첫번째 단서다.쉽게 말해 곡의 기본 구성부터 일체의 작위성이 사라져있다.드럼과 신디사이저 노트가 초단위 이하로 쪼개져있어 전개가 굉장히 빠른 것은 물론,다음 소절을 쉽게 예측할 수 없어 긴장감이 팽팽하게 유지된다.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듬이 굉장히 훌륭하다!

  [Moai]는 멜로디의 흐름 자체는 그다지 빠르지 않은데 행간을 채워넣는 리듬이 굉장히 타이트하게 구성되어 있어 전혀 지루할 틈이 없다.그런가 하면 빼곡하게 들어찬 전자음들이 곡의 컨셉에 맞춰 일관되게 자연의 감수성을 잘 전달한다는 점이 놀랍다.그간 자연주의를 외쳐대는 뮤지션들은 많았지만 이렇게 온전히 프로그래밍 사운드와 전자악기들만을 사용하여 자연을 노래한 경우는 없었다.신디사이저를 잘게 쪼개는 것만으로 이렇게 청명한 느낌을 낼 수 있다니!

[Moai]에서 감지되는 이지 팝의 기운은 두번째 트랙인 [Human Dream]으로 이어진다.역시 신기하게도 전자 오락의 효과음을 차용한 멜로디가 굉장히 따뜻하다는 느낌을 준다.현악기 스트링이나 습기 먹은 림샷을 잔뜩 집어넣은 작위적인 국내 가요들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따뜻함이다.먼 기억 속 고전 게임들의 미디음이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일까.그런데 이런 따뜻한 멜로디 위에 얹힌 가사는 굉장히 어둡다.웃음을 가득 머금은 듯한 밝은 목소리로 부르는 보컬 탓에 섬뜩함마저 느껴질 정도다.역시 단순히 멜로디만 듣고 연상해내기 힘든 의외성이 가득하다.

그런가하면 [Tik' Tak']에서는 다시 록 성향을 강화시켜놓는데,사비로 들어가기 직전 템포를 완전히 죽이면서 공백 상태를 만들어 놓고 이어서 등장하는 첫 소절에 발음상 강세와 함께 밴드를 한꺼번에 터뜨리면서 강력한 단발 훅을 내뿜는다.소재들이 워낙 잘게 쪼개진 상태로 곡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다보니 중간에 잠시 틈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긴장감이 흐르는 진공 상태가 형성된다.같은 방법이 [Bermuda]로도 이어지는데,'천상에서'로 시작되는 메인 훅은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강력하다.그런데 이 강력한 훅은 곡 전체에서 딱 두 번 밖에 등장하지 않는다.그 대신에 마무리를 담당하는 것은 더 강력한 멜로디로 구성된 브릿지다.시작 부분에서 폭풍우와 천둥번개가 몰아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귀를 장악하며 치고 들어오는 사운드의 향연이 기가 막힌다.국내에서 록 사운드를 가지고,게다가 가요의 대중적 작법을 완전히 깨부수면서도 이만큼이나 이지 리스닝이 가능한 트랙을 뽑아낸 전례가 있었던가.소재는 비대중적이지만 결과물은 대중적이고,결과물이 대중적이지만 방법론적으로 보면 지극히 독창적이고 작가주의적이다.한 마디로 완벽하다.

한 편 이 트랙에는 수많은 문학적 메타포들이 녹아들어가 있다.이소라의 노랫말이 한국 가요계를 대표하는 '산문형' 가사라면,서태지의 그것은 완전히 '운문형'이다.서태지의 가사들은 흡사 박찬욱 영화를 보는 듯 청자와의 소통에 불친절하고 과도하게 이미지즘에 치중하는 듯 보이는데,이번 앨범의 경우는 작사의 컨셉트을 언론에 어느 정도 공개하고는 있지만 역시 해석의 단서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사실 잘 보면 언론을 통해 나오는 이런 이야기들은 그저 힌트에 불과한 것으로,역시나 실제 창작의도를 교묘하게 가려 서태지의 신비주의 마케팅은 계속되고 있다.따라서 온전한 해석을 위해서는 공개된 컨셉트에서 키워드를 뽑아낸 후 관점을 약간 뒤틀어 바라볼 필요가 있다.예를 들어 '아담과 이브의 타락한 성'에 대해 다뤘다는 [Bermuda]는,'성(性)'이라는 키워드를 쥐고 바라보면 어느모로 바라보나 'SEX',그 중에서도 '소녀의 첫 경험'을 적나라하게 노래하는 곡이다.'천상에서 그대가 눈뜰 때/좋은 화음처럼 이 비가 그칠 때/까진 All night long/All night long 이 밤에' -훅의 첫마디부터 오르가즘과 결합,사정의 장면들이 구체적으로 은유되어 있고,'이지러진 눈망울로도 그저 아름다운' 소녀가 '두 눈가의 눈물을 넘어선 후 어른이 되는' 과정이 역시 선명하게 드러나있다.그리고 형성되는 'Pathos'로 인해 모순은 시작된다.아름다운 성(性),그러나 동시에 타락한 성(性).필자가 국어교육학을 전공하고 있는 탓인지는 모르지만,소녀의 이 모순을 설명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들이 아주 세심하고 치밀하게 가사 전반에 녹아들어가 있는게 눈에 띈다.'엄숙한 비겁자','삼각 원들'과 같은 표현은 그야말로 기가 막힌 모순 형용법들이다.뮤직비디오를 보면 창작의도가 더욱 분명해진다.맑은 눈의 소녀가 사과를 베어 물고,붉은색 뱀을 만난 후,진한 화장을 하고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다른 사람인양 나타난다.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구두 탓에 넘어지게 되고 결국 절규와 함께 눈물을 터뜨린다.이렇게 해서 소녀가 주인공인 모호한 이 한편의 가사는 의뭉스럽게도 강렬한 록 사운드 속에 남성의 목소리로 불려지며 정체를 한꺼풀 숨기고,다시 스리슬쩍 뮤직비디오 영상을 통해 여성 화자의 이미지를 구체화시키면서 한 편의 걸출한 문학적 에로티시즘을 완성해낸다.이제까지 국내 가요계에서 트랙 하나를 둘러싼 모든 요소들이 이 정도의 유기성과 상징성을 가지고 완벽하게 조화를 이뤘던 적이 있었나.이만큼이나 심층적인 의미의 '해석'과 '감상'이 필요한 곡이 있었나.[Bermuda]는 현 시점에서 단연 한국 가요 최고 명작 중 하나다.

  [COMA]의 해석 역시 마찬가지다.불타버린 숭례문을 모티브로 했다고 하지만,아무리 가사를 곰씹어봐도 문화재를 잃은 씁쓸한 느낌 같은 것은 감지하기 어렵다.하지만 숭례문 소실을 축으로 시선을 돌려,숭례문이 완전 개방된 시점을 생각해보면 모든 의미가 선명해진다.'높게 올려 쌓은 담/이 단절 속의 난 나의/꿈에 거짓을 고한 이후/그 향긋했던 약속의/이 도피처로 돌아온 나는/단 하루도 편히 잠들지 못했는걸','무력함/저 TV가 내게 약속할 때/어차피 난 아무런 말도 못한 채/그저 웃지'.이 정도면 거의 민중가요 수준이랄까.'You See the Lie?'의 가사를 내뱉는 그로울링이 섬짓하게 다가온다.

정규 앨범에서 추가된 신곡 [REPLICA][아침의 눈]은 어떤 면에서 가장 실험적인 곡들이다.[REPLICA]는 앨범 전체에서 가장 거칠고 강한 사운드를 뿜어냄에도 불구하고 서태지의 보컬이 터질듯 말듯 강약을 오가며 독특한 싱코페이션으로 전반부를 주도한다.성량이나 발음 상의 문제가 끊임없이 지적됨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서태지의 보컬은 여전히 칭찬받을 만하다.[아침의 눈]은 서태지가 '네이쳐 파운드'를 통해 보여주려 했던 것들의 종합판 격이라 할 수 있다.강물이 흘러가듯 슬로우한 템포 안에 다양한 음악적 아이디어들이 충실하게 들어차 있고,그 안에서 자연의 감수성들이 가슴 벅차게 전해져온다.물론 부분부분 넬이나 시규어 로스가 연상되는 구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발매 형식의 문제로 인해 상업주의 논란의 중심에 회자되고 있는 서태지이지만,이만한 수준의 앨범이면 까놓고 말해 그런 논쟁들은 모두 의미가 없어져버린다.분명히 말해 이 앨범은,이소라 7집과 함께 이미 대중 가요,대중 음악의 영역을 넘어서버린 위압적인 걸작이다.싱글 트랙,앨범 구성,가사,컨셉트,사운드,대중성,예술성,상업성,음악성의 모든 영역에 걸쳐 이렇게까지 치밀하고 완벽하게 구상된 음반이 국내 가요 역사상 있었던가.필자는 개인적으로 서태지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7집까지는 그의 음반을 한번도 구입해본 일이 없다.하지만 서태지 8집은 다소 폐쇄적인 그의 팬덤을 뚫고 필자와 같은 일반 대중들도 끌어들일만큼 놀랄만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역시나 리믹스 4곡이 수록된 것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은데,다른건 제쳐두고 [COMA (Nature)] 하나라도 들어보길 권한다.쉽게 말해 진짜 '대박'이다 이거.



출처: 서교수의 대중음악읽기 - http://blog.naver.com/prof_seo/120086699259
게시일: 2009.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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