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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연구│모아이에서 발견한 눈물 한 방울
강명석  2009-09-05 23:25:04, 조회 : 866, 추천 : 138

강명석의 서태지 연구
서태지 싱글 <Atomos Part Moai>를 해부하다



  

서태지의 새 싱글 <Atomos Part Moai> (이하 <Moai>)는 마음 먹으면 여러 장르나 뮤지션을 거론할 수 있다. 이미 일부 기사에서 언급된 대로 ‘Moai’에서 박자를 잘게 쪼개는 드릴&베이스가 들어있다는 점에서 IDM(Intelligent Dance Music)을 언급할 수도 있고, ‘Human dream’의 전자음과 록 사운드의 결합은 코넬리우스(Cornelius)를, 그 ‘추억의 오락기 소리’는 YMCK처럼 8비트 게임기 소리로 곡을 만드는 시부야 계열의 뮤지션을 언급할 수도 있다. 그러나 <Moai>를 듣는데 이런 것들을 굳이 알 필요는 없다. 서태지가 <Moai>에서 가져온 건 장르가 아니라 그 장르에 있는 사운드다. ‘Moai’는 드릴&베이스의 어느 곡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아니라 잘게 쪼개는 리듬을 들고 온 것이고, ‘Human dream’에 옛날 오락기 소리가 들어갔다고 해서 그것을 해당 장르의 뮤지션과 비교한다면, 아마도 서태지가 조금 억울해할 것 같다. 서태지가 과거 ‘울트라 맨이야’같은 곡을 발표할 때 가져온 것이 장르적 특질이라면, <Moai>를 위해 가져온 것은 그 장르들이 품고 있는 사운드 ‘소스’들이다.

<Moai>는 실험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대중적이다



서태지가 <Moai>의 장르를 스스로 ‘네이쳐 파운드’(nature pound)라고 명명한 것을 뮤지션의 허세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Moai>의 장르는 정말로 서태지가 명명한 것이 아니면 딱히 무엇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것은 ‘Moai’에서 리듬이 멜로디를 조각조각 해체하고, 멜로디가 아닌 리듬의 변화무쌍한 전개가 곡을 이끌어가기 때문만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구조를 완성시키기 위해 서태지가 선택한 방법론이다. ‘Moai’의 시작을 들어보라.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로 시작된 곡은 그 물방울이 떨어지며 ‘파장’을 일으키는 소리와 함께 ‘노이즈’가 낀 드릴&베이스의 리듬이 이어지고, 그 위에 다시 나른한 느낌의 이펙트와 박수 소리가 깔리며, 그 박자와 박자를 다시 쪼개는 이펙트가 가볍게 들어간 뒤, 실제 연주인 폴리네시아 퍼커션이 이어진다. 단 한 개의 소리로 시작된 곡이 비슷한 톤이나 박자의 사운드로 연결되고, 그 사이로 또 다른 박자가 치고 들어가면서 처음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전개가 완성된다. 이것은 마치 음악광이 소녀시대부터 에미넴을 지나 메탈리카에 이르는 곡을 ‘일관성’있게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만들겠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컴필레이션 앨범을 만들려면 앨범 전체의 기승전결은 물론 곡과 곡의 리듬 연결, 사운드의 유사성을 모두 계산해야 한다. 서태지는 그걸 한 곡 안에서 하고 있고, 심지어 ‘Moai’의 도입부는 23초 만에 그 과정을 끝낸다. ‘Moai’는 (그의 동료들에게는) 악독한 음악 마니아가 만들어낸 편집증적인 작업의 산물이다. 서태지가 4년 동안 이 앨범을 만들었다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닐 것이다. 보통의 곡이라면 곡 전체의 기승전결을 생각하면 되지만, <Moai>의 곡들은 1초 뒤의 사운드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수 없이 많은 음악을 들으면서 적당한 소스를 찾아야 하고, 그 소리들이 어울릴 때까지 계속 레코딩에 매달려야 하며, 그것이 전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전개에 대해서도 계산해야 한다.

이런 시도는 듣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마법’을 부린다. 록 사운드로 진행되던 ‘human dream’에서‘뿌짖뿌짖뿌짖’하는 멜로디와 함께 갑자기 관악기가 등장하거나, 메틀 사운드로 구성된 ‘T`ikT`ak’에서 하프 소리가 곡을 서정적으로 만드는 순간은 서태지의 팬들에게 4년을 기다린 보람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서구 장르의 차용을 통해 극찬과 악평을 동시에 경험하곤 했던 서태지는 인터넷을 통해 서구의 최신 장르들을 듣는 음악 마니아들이 더 이상 그의 장르 변신에 흥미를 느끼지 않을 때쯤, 장르와 장르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음악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Moai>의 방법론적인 가치는 편집증적인 사운드의 구성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서태지의 편집증적인 사운드 실험은 결과적으로 ‘팝’을 재구성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 팝은 멜로디의 구성 파괴를 통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갔다. 가장 유명한 예로 비욘세의 ‘Crazy in love’를 들 수 있는데, 이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보컬의 멜로디가 클라이막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서태지는 그것을 사운드로 구성하고 있다. ‘Moai’와 ‘T`ikT`ak’의 도입부가 가장 분명한 예라 할 수 있는데, 두 곡의 도입부는 리듬의 전개를 통해 짧은 시간 동안 곡을 한 번의 클라이막스로 끌고 간다. 일반적인 기승전결의 구조 대신 사운드와 사운드가, 혹은 멜로디와 사운드가 끊임없이 치고 받는 과정에서 기존의 곡들에 비해 훨씬 많은 절정을 만들어낸다. ‘Moai‘에서 툭 치고 나오는 폴리네시아 퍼커션이나, 간주에 등장하는 하프 소리와 드릴&베이스 리듬의 조합만으로도 듣는 사람이 노래에 주목하게 만든다. <Moai>의 멜로디가 대중적이기 때문에 실험적이라는 말은 반만 맞는 얘기다. <Moai>는 실험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대중적인 접점을 찾아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깊이를 더하다



이번 앨범으로 앞으로 서태지의 음악에서 음악적 일관성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런 관점에서 특히 주목해야할 것은 ‘T`ikT`ak’이다. 네이쳐 파운드는 보통 ‘Moai’를 언급하면서 나오지만, 서태지가 기존의 스타일 위에 네이처 파운드, 혹은 자신의 방법론을 말끔하게 적용한 것은 ‘T`ikT`ak’이다. 긴장감 있는 각 절의 멜로디와 곧바로 폭발하는 일렉트릭 기타의 연결은 7집의 ‘F.M business’에서 이미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F.M Business’는 그것을 랩과 메틀의 결합이라는, 이미 장르적으로 검증된 사운드를 통해 구현했다. 하지만 T`ikT`ak’은 서태지의 노래만으로 곡을 채우면서, 그 사이에 사운드를 끊임없이 조합하면서 전개를 발전 시켜 폭발적인 후렴구로 이어진다. 컴퓨터로 만든 리듬과 효과음이 하나하나씩 쌓이고, 그 위에 하프(!)가 첨가 돼 곡의 전개를 끌어올리며, 다시 그 사운드를 이어받은 리듬이 곡을 폭발시킨다. ‘F.M Business’보다 훨씬 더 긴장감 있는 구성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서태지가 평소와 똑같은 보컬을 쓰고도 파워풀한 곡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만든다. 이는 서태지의 보컬을 안정감 있게 잡아낸 레코딩 기술의 성공이기도 하지만, 사운드가 논리적으로 하나씩 쌓이면서 서태지의 보컬과 사운드의 전개가 자연스럽게 융화되기 때문이다. ‘Moai’에서도 서태지의 보컬은 큰 음역대의 변화를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Moai’는 리듬이 곡을 변화시키고, 피아노와 베이스가 곡을 변화무쌍하게 이끌어 가면서 곡을 스펙터클하게 만든다.

‘T`ikT`ak’과 ‘F.M Business’의 연관성은 서태지의 음악적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한 가지 힌트다. <Moai>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어쩌면 서태지의 음악적 구성 방식이 아니라 앞으로 서태지의 음악에서 음악적 일관성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Moai’에 나오는 드릴&베이스는 ‘live wire’에서 등장했던 것이고, ‘Human dream’에서 경쾌한 옛날 오락기 소리가 발전해 록 음악으로 변하는 전개는 5집의 ‘Take 4’와 닮아있다. 그리고 거의 초를 재가며 변화를 체크해야할 정도로 정교한 변화는 5집에서 이미 록 사운드를 중심에 놓고 시도한 것이다. <Moai>는 그것을 좀 더 리듬에 집중해 만들어내면서, 그 방법론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었다. 앨범마다 서구 장르의 응용을 시도하면서 슈퍼스타가 됐던 뮤지션이 장르적 변신이 주는 쾌감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깊이를 더하기 시작했다.


서태지, 숨겨놓았던 감성을 비로소 꺼내놓다

<Moai>는 온갖 포장 속에 숨겨놓았던 30대 후반의 남자가 감정을 내비친 순간이 아닐까?


특히 <Moai>에서 서태지와 그의 동료들이 도달한 녹음 기술은 그 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그의 후배들에게도 노하우가 전달 됐으면 싶을 만큼의 수준을 보여준다. 서태지의 음반은 5~7집 모두 정규 앨범에서는 사운드가 건조하고, 공간감이 잘 살지 않아서 결국 리레코딩 앨범이나 스페셜 앨범에서의 리마스터링 등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했는데, <Moai>에서는 그럴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충분한 수준을 들려준다. ‘Moai’의 첫 부분에서 물방울이 떨어질 때의 공간감은 녹음기술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 녹음 기술의 발전은 서태지가 지금 추구하는 음악이 어떤 모습인지 추론 가능하도록 만든다. 사운드의 공간감과 위치가 정확하게 표현되면서, 서태지의 음악은 상당히 3차원적으로 변한다. ‘Moai’의 중반에서 뒤에 물러나 있던 하프 소리가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오면서 곡의 전개가 바뀌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 점에서 이 앨범은 듣는 사람에게 최소한 어느 정도의 공간이 확보되는 오디오 시스템을 요구한다. 소리로 3차원적인 공간을 만들어내는 이런 녹음은 스페셜 앨범의 5집 리마스터링 앨범과도 일맥상통 하는 것으로, 이런 음악들은 듣는 사람의 어떤 감정을 자극하기 보다는 듣는 사람이 곡을 감상하면서 각자의 감정을 느끼는 것에 가깝다. 그것은 마치 그림 한 장을 걸어놓고, 감상은 각자에게 맡기는 것과 같다. 서태지는 그 중에서도 점묘화다. 하나하나 찍어서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엄청난 시간이 들지만, 그만큼 디테일하게, 최대한 자신의 이상에 가까운 모습을 표현할 수 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면 유희열이 토이 6집을 내면서 했던 말을 상기해도 좋다. “(이번 앨범은) 대중에게 다가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지금 내 필터를 거친 나의 음악이 내가 생각하는 정답이냐 아니냐에 대한 싸움이었다.” 서태지의 음악적 발전에 대한 평가는 이번 앨범의 모든 곡이 공개된 뒤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적어도 <Moai>로만 본다면, 그는 제대로 나이 들어가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 서태지는 왜 이런 방법론을 선택했을까. 물론 그건 서태지만이 알 수 있다. 하지만 ‘Moai’의 멜로디는 그 힌트를 던져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Moai’는 대중적인 멜로디라고는 하지만, 실상 노래만 따로 불러보면 이것이 과연 대중적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 정도로 멜로디가 뒤죽박죽이다. 한 음을 사이에 두고 음의 고저가 크게 달라지고, 도중에는 변박도 들어간다. 후렴구의 ‘내 가슴 속에 남은 건 / 이 낯선 시간들 / 내 눈에 눈물도 이 바다 속으로’는 세 개의 다른 멜로디가 부딪치는 느낌을 준다. ‘Moai’에서 변화무쌍한 건 사운드 뿐만 아니라 보컬의 멜로디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Moai’의 멜로디는 편곡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느낌을 준다. ‘Moai’의 원곡이 곡이 진행되는 동안 몇 번씩 클라이막스를 전달하면서 서태지의 목소리에 마치 어떤 희열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면, 폴리네시안 퍼커션과 베이스 연주를 없애고 컴퓨터로 찍은 리듬으로 곡을 진행하는 ‘Moai’의 리믹스는 그보다 상당히 차분하게 들린다. 곡의 한 요소만 빠져도 차분하게 변하는 서태지의 목소리와 멜로디. 즉, ‘Moai’에서 서태지가 편집증적으로 쌓은 사운드들은 그것들이 결국 클라이막스로 가는 과정이다. 사운드를 끊임없이 실험하고, 자신의 이상에 최대한 가까운 사운드를 통해 만들어낸 것은 어떤 카타르시스의 순간이다. 사운드와 사운드가 복잡하고 힘든 과정을 통해 어느 순간 시원한 해방감을 주는 순간. 혹은, 고통을 뚫고 나온 눈물 한 방울 같은 것. 그것은 ‘이제는’을 부를 때부터, 혹은 ‘하여가’나 ‘교실이데아’에서 어느 순간 카타르시스를 던져주는 서태지의 강력한 멜로디가 가지는 원형일지도 모른다. 멜로디를 감싸던 장르를 벗겨내고, 자신의 평범한 목소리에 가장 어울리는 멜로디를 만들어내자, 애써 복잡한 고민의 시간을 뚫고 나오는 연약한 청년의 감성이 있다. 어쩌면 그것은 음악에 매달렸고, 음악으로 슈퍼스타가 됐고, 그래서 음악이 곧 인생이 돼 버린 30대 후반의 남자가 자신을 둘러싼 온갖 포장 속에 숨겨놓았던 감정 같은 것은 아닐까. 서태지는 그렇게 돌아왔다.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지 않는, 눈물 한 방울의 감수성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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