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태지와의 첫 인터뷰(조선일보)
운영자  2009-08-23 15:16:06, 조회 : 1,039, 추천 : 72

서태지인터뷰 무삭제전문  출처:조선일보 한현우기자방  


서태지와의 첫 인터뷰


지난 17일 서태지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매우 뜻깊은 인터뷰였습니다. 저는 서태지의 팬입니다. 그러나 보통 말하는 ‘태지 매니아’는 아닙니다. 그의 음반을 모두 갖고 있는, Rock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서태지컴퍼니의 안우형 대표를 처음 만난 것이 작년 여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서태지 인터뷰를 졸랐습니다. 그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서 안 대표에게 미안할 정도로, 꾸준히 그리고 집요하게 인터뷰 요청을 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단순하게도, “대중음악 담당기자로서 한번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악수를 하기 위해서도 아니요, 그에게서 놀라 자빠질 답변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처럼 대중음악에 한 획을 그은 아티스트를 만난다는 것은, 저 아니라 누구라도 대중음악을 담당하는 기자라면 생각하고 있는 것일 겁니다.

아쉽게도 기자회견장에서는 “언제 결혼하느냐”, “살이 찐 것 같다” 같은 요상한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 욕구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와 진지하게 음악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17일의 인터뷰는 그것을 다소나마 해결시켜주었습니다. ‘다소나마’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례적으로 두시간 반이나 인터뷰를 했으나 역시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인터뷰 기사를 썼지만, 종합일간지에 서태지와 나눈 음악 이야기를 구구절절 싣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원고지 11매 분량으로 줄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조금 더 음악적 영역으로 들어간 질문과 대답은 빼야 했습니다. 음악 전문지가 아니니까요.

92년 서태지가 데뷔하던 해, 저는 미국의 시골 마을에 있었습니다. 그 시골에까지 서태지 테이프가 들락거릴 만큼 ‘난 알아요’의 열풍은 뜨거웠습니다. 당시 국내 음악은 신해철과 신승훈, 그보다 앞선 산울림과 김수철 정도만 듣던 저에게 서태지 음악은 확실히 충격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2년이나 흐른 엊그제 서태지를 만났습니다. 그 이야기를 어떻게 원고지 11매로 줄이겠습니까. 아깝고 섭섭해서 인터뷰 내용을 수첩에 적은 대로, 기억나는 대로 이곳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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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음악전문지 ‘핫뮤직’에서 서태지 특집을 했습니다. 읽어보셨나요?
“한번 읽었습니다.”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핫뮤직이란 특정 매체를 거론하고 싶지는 않습니다.(그는 누구를 공격한다는 느낌을 줄까봐 매우 신경쓰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핫뮤직을 포함한 평론에 대해 생각을 말씀해 주시죠.
“저에 대한 음악적 평론은 얼마 없습니다. 대부분 가사 위주로, 제가 어떻게 메시지를 보내는가에 집중됐습니다. 음악은 맛배기로 취급하는 거죠. 특히 우리나라 평론은, 평론가들은 음악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몇년간 만든 음악을 하루 이틀 들어보고 마감에 쫓겨서 씁니다. 개인적 견해를 너무 많이 담고요. 평론가의 할 일은, 음악을 잘 모르는 보통 사람들에게 듣기 좋도록 설명해주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제가 어려서 음악 들을 때도, 어떤 부분이 좋은데 왜 좋은지 잘 몰라요. 그런게 너무 많아요. 지금도 그럴 때가 있어요. 그 부분을 평론가가 해줬으면 해요. 그런데 지금 평론가들은 뮤지션 위에서 글을 씁니다. 전체적으로 음반시장을 살리고, 좋은 쪽으로 해줬으면 좋겠어요.”

-핫뮤직은 그나마 음악적인 접근을 시도했는데요. 이번 음반이 ‘이모 코어’가 아니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번의 제 음악은 이모코어란 장르적 개념이 아니에요. 이모코어라고 말한 적도 없고요. 감성적인 음악, 가사를 들으면 어렸을 적이 생각나고 해서 그 제목이 좋겠다고 해서 ‘감성 코어’라고 붙였죠. 감성적 가사와 하드코어의 결합이랄까. 저는 음악을 이것저것 많이 듣는데, 그러다 보면 관심이 가는 밴드들이 생겨요. 그것들을 머릿속에 담아두면 섞이고 실제 연주로 따보기도 하고, 장르 개념 없이 연습하는 거죠. 그러다가 ‘이런 걸 해보고 싶다’느느 생각이 들어요. 미리 가사도 써두고요. 뭔가 똑같은 것을 다시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정말 강해요. 제가 싫증을 잘 내거든요. 팬들도 같은 것 듣기를 싫어하고. 아마도 다음 음반은 이번과 같은 장르가 아닐거예요. 물론 뿌리는 같은 것이겠지만요.”

-그 뿌리는 Rock을 뜻합니까.
“그렇습니다. 외국에도 예전 것을 고수하는 아티스트가 있고 새로운 걸 찾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 같은 경우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극단적으로 새로운 걸 찾는 예일 거예요. 그렇게 안하면 잊혀지기 십상입니다. 한국에서는 많은 분들이 저에게 관심을 가져주니까 더 많은 것을 할 기회가 있어요. 저에게 좋고 유리한 점이죠.”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부터 줄곧 흑인 음악의 영향이 느껴지는데요.
“시나위 시절에도 흑인 음악 많이 들었어요. 그러면 다들 ‘왜 삼표 음악’을 듣느냐고 했죠.(삼표 음악이란, 삼표 연탄이란 말에서 따온 것. 실제 삼표 연탄은 유명 연탄 브랜드였음) 저는 흑인 음악도 트로트도 좋아해요.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에는 절반 가량이 흑인음악 아니었나 싶은데요. 그렇지만 통통 튀는 쪽보다는 힙합을 많이 들었어요.”

-음반을 좀 더 자주 낼 수는 없습니까.
“음반을 자주 내고 좀 더 빨리 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점점 작업기간이 길어져요. 지난번 음반보다 훨씬 좋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다보니 마무리 작업에만 1년 정도 걸려요. 이번 음반은 3년 7개월이 걸렸죠. 중반부터 탑, 락과 함께 작업하면서 조금 빨라졌고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앞으로도 역량있는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고 싶어요. 외롭지도 않고요. 목표는 ‘다음 앨범은 좀 더 빨리 내고 싶다’ 이겁니다.”

-이번에는 부쩍 방송출연이 늘었는데요.
“그건 장르적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때도 1, 2집에는 정말 방송 많이 했고요. 3집은 딱 세번 했어요. 4집때 또 많이 했고, 5집은 얼굴 한번 내비치지 않았죠. 6집 ‘울트라맨이야’는 좀 어두운 음악이어서, 방송나가서 홍보한다 해도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악은 아니었죠. 이번 음악은 좀 쉽고, 제가 ‘멜로디 샤워’라고 표현했는데, 서너 번 들으면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이에요. 대중들에게 방송을 통해 홍보할 만 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다고 토크쇼까지 나가는 건 좀...
“이번 음반 자체가 제 사적인 이야기가 많은 음반이에요.”

-그래서 묻는 건데, 10월 4일은 뭔가요?
“어, 이건 스포츠지 질문인데...스포츠지 기자들이 물어보기에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답했어요. 그런데 ‘사실이다’라고 기사가 나왔더군요. 사실이 아니고요. 그 곡은 네 가지 코드로만 진행되는 대표적인 곡입니다. 잡다한 소리를 다 빼고 딱 네 코드만. 멜로디도 유니크하고, 음반의 outro에도 연결되죠.”

-워낙 인터뷰도 적고 노출도 없으니 오해도 많이 받지 않습니까.
“제가 스트레스를 많이 안받는 스타일이에요. 나쁜 얘기 들으면, 좋은 얘기보다 나쁜 얘기에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요즘은 좋은 얘기만 있어서 좀 심심해요.(웃음) 예전에는 인터뷰도 안하고 촌지도 안주니까 상상하기 어려울만큼 나쁜 기사가 많이 나왔어요. 그러나 제가 음악하는데는 걸림돌이 되지 않아요. 더 싸울 수 있는 계기가 되죠. 맞을 수록 탄탄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납득이 되는 얘기면 수용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이 ‘촌지’ 부분에서 서태지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했습니다만, ‘촌지를 안줘서 나쁜 기사가 나왔다’는 것 역시 서태지의 주장이기 때문에 신문에 최종인쇄된 기사에서는 삭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로서는 ‘나쁜 기사들’에 대항한다는 의미로 기사에 포함시키고 싶었지만 기술적으로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서태지는 뮤지션이라기보다 마케팅 전문가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프로모션 전략은 ‘굉장히 전략적이지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1집때도 그랬어요. 우리끼리 ‘야, 지루하다 곡 바꾸자’ 하는 식이었거든요. 제가 지금도 자유롭게 음악 하는 것이 제가 기획사의 사장이고 하고 싶은 음악을 맘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뭘 하면 들어맞아죠. 감(感)으로 하는 건데, 대중이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하기보다 그냥 제가 하고싶은 방향으로 하면 맞는 거예요.”

-바로 그 부분이 타고난 재능일 수도 있겠군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보컬리스트로서 서태지를 평가한다면.
“제가 하는 음악에는 맞아요. 저는 제 보이스가 좋아요. 성량이 좀 적고 음압(音壓)이 세지 않은 편이죠. 그래도 제 음악에는 맞지 않나 싶어요. 어떤 ‘경계’에 있는 목소리 같아요. 그리고 음악은 실력이 아니라 느낌이잖아요. 실력만으로 따지면 80년대 스피드 메탈이 최고 아닌가요. 소위 ‘음학’이 아니라 ‘음악’이니까요. 보컬리스트 서태지를 딱히 생각해보지는 않았어요. 저는 그저 음악가일 뿐이죠.”
(스피드 메탈 이야기가 나오면서 우리는 G3에 잉위 맘스틴이 새로 들어온 얘기, 지난번 맘스틴 공연에서 실망했던 이야기 같은 인터뷰와 상관없는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얘기 때문에 인터뷰가 길어졌던 것 같고요)

-굳이 외국에서 작업하는 이유가 있나요?
“제일 큰 건 구속당하는 느낌이 싫어서죠. 1집 때는 믹싱이란 것이 거의 없다고 할 만큼 생소리로 음반을 냈어요. 돈도 없었고 실력도 없었죠. 제작비도 거의 안 들었고. 지금 들으면 엄청나게 조악한데, 그런 음반이 100만장 넘게 나갔다는게 좀 웃겨요. 이제는 돈을 벌었으니 음악에 투자하는 거죠. 2집 때 연희동 집 지하에 ‘테크노 T’라는 스튜디오를 차려서 믹싱을 혼자 다 했어요. 그런데 맘에 안 들더라고요. 국내 엔지니어도 제가 원하는 소리를 못 잡아요. 그래서 3집부터는 전부 외국에서 녹음했어요. 2집까지만 해도 지하에서 혼자 작업했어요. 실제로 6개월간 지하에서 작업만 하고 나오질 않았어요. 그런데 가사를 쓰려고 하는데 ‘자유’란 것을 잊어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바닷가에서 뛰어 다니고 싶었어요. 외국에 나가서 창문을 열어놓고 바람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활력이 됐어요. 그리고 외국에 있으면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요. 라디오만 켜도 수 많은 채널에서 한국에서 한번도 안나오는 음악이 나와요. 그리고 아티스트, 엔지니어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정보도 많이 얻고요. 장비는 외국이나 한국이나 똑같아요. 그러나 제 노하우는 외국에서 얻은 겁니다.”

-예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독특한 기타 사운드를 잡기 위해 스피커에 마이크를 대고 녹음한 음원을 기타 사운드로 쓴 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스피커에 마이크만 갖다대나요. 무전기도 쓰고, 별별 것 다 하죠. 그러니까 시간이 많이 걸려요. 이번에도 기타 사운드 잡는데만 1, 2주일이 걸렸어요. 예산도 많이 들고요. 그렇지만 돈은 얼마가 들어가는지 알고 싶지도 않고 신경도 안써요. 돈 아끼면 음악이 안되니까요.”

-얼마 전 White Stripes의 잭 화이트와 인터뷰를 했는데, “록과 컴퓨터는 어울리지 않으며, 60년대 말에 이미 록 음악에 필요한 음향장비는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이런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저도 White Stripes 음악 좋아해요. 그런 음악이 제가 하고 싶은 음악 중 하나이기도 한데, 1순위는 아니에요. 제 스튜디오 이름처럼, 제 음악은 테크노 성향이 강합니다. 기계적인 도움 받은 음악과 인간적 느낌을 극대화한 음악은 완전히 다르죠. 글쎄, 나이 먹어서는 달라질 지 모르지만, 지금은 디지털 장비, 믹서를 최대한 많이 이용한 음악을 하고 싶어요. 게다가 수많은 음악 테스트를 클릭 한번으로 저장할 수 있잖아요. 시뮬레이션도 할 수 있고. 디지털 장비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쪽의 음악을 당분간 하고 싶습니다. 사실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아요. 시간은 너무 빠르고요. 그렇지만 거역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고 아닌가 합니다.”
(이때쯤 서태지는 특별히 질문하지 않았으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중2때 스쿨밴드 ‘하늘벽’을 결성했어요. 매니아들한테는 다 알려진 얘기죠. 그때 들국화 음악도 하고 헤비메탈을 했죠. 그때 1만5000원짜리 일렉트릭 기타를 샀어요. 전화선처럼 돌돌 말린 코드를 전축 헤드폰 잭에다 꽂고 거울을 봤어요. 아, 멋있더라고요. 그때 그 기분은 아직도 기억나요. 처음엔 음악을 장난으로 시작했는데 점점 진지해진거죠. 그러면서 공부는 완전히 놓아버린거죠. 숙제도 안하고. 이건 처음 말하는 건데, 중3때 전교 꼴등도 했어요. 전교 530 몇명중에 530 몇등을 했죠. 이건 성적기록부에 남아있을 거예요. 가출도 많이 하고 학교도 잘 안갔어요. 학교 수업시간이 너무 아까웠어요. 당시엔 선생님과 부모님 모두 저의 갈길을 막는 방해자로만 생각됐어요.(서태지는 중3때 자신의 담임 선생님 이야기를 한참 했습니다. 학교에 빠지면 찾아다니고 꼭 챙기는 분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음악이 내 갈 길이란 신념이 생겼죠. 구체적인 미래까지 생각했어요. ’10년 후엔 우리나라 최고의 뮤지션이 되고 세계로 나가겠다’고 말이죠. 그래서 부모님을 설득했는데, 아버지가 ‘정말로 열심히 할 수 있느냐’고 물어서 ‘그렇습니다’ 했죠. 그랬더니 아버지가, 그렇게 무섭던 아버지가 돌아서신 거예요. 악기도 사주시고.(이때쯤 서태지 눈가에 물기가 맺히는 것 처럼 보였는데, 그냥 저만 그렇게 느낀 건지도 모릅니다) 그러다가 고1때 중퇴를 했죠.

그리고는 ‘활화산’이란 밴드에 들어갔어요. 당시 대학로에 MTV라고, 뮤직비디오 많던 카페가 있었는데 거기서 멤버 구한다는 벽보를 봤죠. 찾아갔더니 “너 몇살이냐”고 물어요. “17살이요” 하니까 다들 안받아준다는데, 보컬하던 오봉석이란 형이 ‘연습이나 같이 해보자’ 하면서 받아줬어요. 연습이 시작됐는데, ‘우리는 잉위 맘스틴이다’라고 하는 거예요. 제가 속주가 안됐거든요. 그래서 엄청나게 연습을 했어요. 그런데 그 밴드가 보컬 형이 군대에 가면서 해체됐습니다. 그래서 뭐할까 하면서 돌아다녔죠. 다른 밴드에 갈까, 내가 밴드를 만들까 하면서.

그러다가 우드스탁(문정동의 신중현씨 스튜디오)에서 이중산씨를 만난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 신대철씨가 ‘야, 너 이리와봐’ 하고 부르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뭐 잘못했나, 왜 부르나 그러면서 갔는데 ‘너 몇살이야? 시나위에서 베이스 쳐볼래?’하고 묻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시나위에 들어가게 됐죠. 그때 실력이 가장 많이 늘었어요. 공연도 없고 한데 아무 이유없이 엄청나게 많은 연습을 했죠. 저에겐 어머니같은 밴드죠. 시나위는.”

-신대철씨 성격이 워낙 괴팍해서 시나위에서 쫓겨난 걸로 말들 하던데요.
“그건 아니에요. 신대철씨는 성격이 괴팍한 사람 맞습니다. 그렇지만 대단한 아티스트죠. 저에게는 아주 따뜻하게 대해주기도 했어요. 시나위 4집을 내고 음악적 색깔이 맞지 않아서 제가 어느날 ‘나가겠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종서형(김종서)이 ‘쟤 나가면 나도 나가겠다’고 했죠.”
(신대철은 베이시스트 서태지에 대해 ‘칼박똥필’이란 독설을 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박자는 칼인데, Feel이 엉망이란 뜻이죠. 차마 이것까지는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댄스 광풍이 불었는데, 혹시 책임감 같은 걸 느끼나요.
“막연한 책임감 같은거죠. 오히려 그 반대의 음악을 의도한 건데, 비주얼과 마케팅만 부각됐죠. 정말 답답하고 안타까워요. 그런 부분만 카피하는게 화가 나고요. 그렇지만 저더러 ‘네가 다 책임져야 한다’고 공격하는 것은 반대해요. 음악을 사랑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좋은 음악을 만들고 돈 많이 버는 건 좋은 일이잖아요.”

-서태지 밴드를 만들면서 잘 나가던 인디 밴드 멤버를 빼내왔고, 그게 인디 씬에 악영향을 줬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솔로 가수가 인디밴드 멤버 몇 명 뽑아서 밴드 만들었다고 인디가 망가지나요? 저도 뮤지션이니까 잘하는 뮤지션 찾아서 밴드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인디를 해치려고 할 이유가 있습니까. 그것을 저에게 화살 돌리는 것은 무모한 거예요. 그 이면에 음악적 발전도 있잖아요. 설사 돈을 많이 주고 데려왔다고 해도 그걸 문제삼을 수 있습니까.”

-서태지 팬들은 서태지 음악만 듣고 다른 록 음악을 안듣지 않습니까. 서태지 음반은 100만장 넘게 팔리고, 콘이나 림프 비즈킷은 1만~2만장 밖에 안 팔리잖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태지 팬들이 록 콘서트, 인디 콘서트에 많이 참여하는 걸로 알아요. 아주 긍정적인 현상이고요. 예를 들어 링킨파크 공연에 태지 매니아가 2000~3000명은 됐습니다.”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태지 매니아라기 보다, 제 음악을 듣고 제 음반을 사는 정도의 팬을 말씀드리는 거죠.”

-서태지 팬들의 폐쇄성이 서태지의 길을 가로막는 일은 없습니까.
“폐쇄적이라기보다 피해의식이 많지요. 그러나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제가 다른 밴드를 이야기해도 거들떠보지 않았어요. 지금은 많이 오픈 마인드 됐어요.”

-지난번 공연을 얘기해보고 싶은데, 첫날 사운드가 별로 좋지 않았고 공중전화 부스 연출도 둘째날엔 없어졌더라고요.
“그게 한달 전쯤에 들어와서 연습하고 해야 하는데...일본에서 전화로, 상상으로 연출을 준비하니까 미숙한게 많죠. 공중전화 부스는, 유리를 끼웠어야 하는데 플라스틱을 끼우는 바람에 조명에 반사가 돼서 아예 둘째날엔 치워버렸죠.”

-그렇다면 공연 한달 전쯤 들어와서 준비하면 되잖습니까.
“그게 일종의 마케팅인데요. 음반내면서 들어와서 바로 공연하고, 김 빠지기 전에 TV 활동도 하고. 그걸 ‘전략’이라고 표현한다면 전략입니다. 그러는게 그림도 좋을 것 같고. 그걸 전략이라고 하는 분들은, 아마도 큰 시장을 경험한 적이 없으니까 그렇게 느끼는 것일 겁니다. ‘서태지 딜레마’라는게 있어요. 태지 매니아들 사이에서 쓰는 말인데, 어떻게 해도 서태지는 욕을 먹는다는 거죠. 방송안하면 잘난척 한다, 방송 하면 한물 갔다...”

-ETP페스트에 서태지 컴퍼니 소속이 아닌 밴드들도 초청하면 어떨까요.
“앞으로 시장이 커지면 그렇게 할 겁니다. 그러나 아직은 넬과 피아만 꾸려도 적자예요.

-ETP가 적자라고요?
“당연히 적자죠. 그런 무대에 그런 음향을 쓰니 비용이 워낙 많이 들어요.”(보통 공연기획사들은 무대에 들이는 비용을 첫 공연에서는 회수하지 못하지만, 전국 투어를 하면서 회수합니다. 투어가 없었던 서태지로서는 적자를 면치 못했던 것 같습니다)

-블라디보스톡 공연 이야기를 좀 해보죠. 왜 하필 블라디보스톡인가요.
“예전부터 해외공연을 많이 생각해왔습니다. 일본과 미국, 유럽에서도 공연 제의가 많았어요. 그런데 음반 작업 때문에 미뤄오다가 이번에 러시아에서 수교 120주년 기념으로 제의가 와서 받아들인 겁니다. 설명하자면 되게 큰 그림인데, 일단 재미있으니까. 우리 장비와 팬들까지 싣고 배 타고 갈 겁니다. 문화교류도 되고, 그쪽도 록 음악 좋아하고. 쉽게 말해, 러시아가 해외공연 첫번째가 된 것일 뿐입니다. 팬들과 함께 세계여행을 하겠다는 꿈도 있었는데, 그 꿈을 이루는 의미도 있고. 공연 뿐 아니라 여러가지 문화체험을 하는 기회가 될 거예요.”

-Live Wire는 혹시 모틀리 크루의 곡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까.
“예, 맞아요. 모틀리 크루 곡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죠. 그러나 제 노래에 담은 의미는 스피커에 들어가는 선, 그것을 뜻합니다. 그 어마어마하게 큰 소리가 제가 추구하는 소리이기도 하죠. 어렸을 적 교회에 갔는데 교회에 밴드가 있었어요. 탕 하고 드럼을 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 충격을 받았죠. 그때까지 그렇게 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큰 소리, 큰 울림을 낸다는 것을 그때부터 좋아했죠. 음악을 몸으로 느끼는 것, 그 진동을 느끼는 것 그 매력 말이죠.”

-지난번 콘과의 합동공연에서 꽃가루도 나오고 풍선도 나왔는데, 메탈 공연에는 어울리지 않는 소품인 것 같더군요.
“메탈 공연이 아니니까요. 음악 뿐 아니라 비주얼도 중요하고 감동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면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거죠. 메탈 공연에 꽃가루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그거 편견 아닌가요? 아이돌 스타들이 많이 쓰니까 그런 걸 하면 쪽팔린다고 생각하는 것 말이죠. 예전엔 양복 입고 록 음악을 하는 걸 상상 못했죠. 지금 영국 밴드들 양복입고 록을 하잖아요. 저도 그렇고. 편견이 없는 세상이 다들 행복한 세상일 것 같아요. 스스로 만들어 놓은 틀과 규격을 고집하면 불만이 많게 되죠. 그러나 하나만 열어놓으면 ‘이런 것도 되네’ 하면서 발전할 가능성이 많아져요.”

-서태지와 아이들의 공연은 실제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인가요.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죠. 전에 기자회견에서 말한 뒤로 전혀 발전이 없는 상태입니다.”

-항간에는 양현석씨와는 친한데 이주노씨와는 사이가 아주 나쁘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그건 아니에요. 그런데 양군과는 좋아하는 게 비슷해서 자주 연락을 하게 되고, 주노씨는 그렇지 못해서 연락이 덜한 차이일 뿐이죠.”

-다음 음반은 어떤 음악이 담길 지 궁금합니다.
“그건 저도 몰라요. 일단 이번 음반 활동에 전념하고, 그 이후에 작업에 들어가면 그때 결정하게 되겠죠. 요즘에는 이모코어를 많이 듣습니다.”

-어떤 이모코어 밴드를 듣는지 말해줄 수 있습니까.
“어느 밴드를 특정해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서태지는 ‘이를테면 The Get Up Kids를 듣느냐’는 질문에 ‘그보다 더 대중적인 이모코어’라고만 답했습니다)

서태지와의 인터뷰는 두시간 반동안 계속됐습니다. 그는 “기자와 음악 이야기를 이렇게 많이 해본 것은 처음”이라면서 “아주 재미있었다”고 했습니다. 저에게도 아주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다만 음악 이야기에 빠지면서 전날 생각해두었던 질문들을 다 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무지막지하게 긴 글,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은 진정 음악을 사랑하시는 분들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인터뷰를 마치고 서태지에게 엄지손가락을 쳐들어보이고 싶었습니다. 무엇 하나에 완전히 몰두해있는 사람을 볼 때 그 누가 엄지손가락을 아끼겠습니까.

한현우(hw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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