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추천글



2004 상반기 한국대중음악 수박 겉 핥기 2
운영자  2009-08-23 15:36:41, 조회 : 591, 추천 : 120

- 기대 이하의 훌륭함
홍수에 가깝게 쏟아진 팝록의 수작들과 적지만 의미 있는 힙합 음반들이 상반기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동안, 일렉트로니카와 하드록은 부진을 면치 못했고, 그나마 라운지에 한 발을 걸치고 있는 일렉트로니카에 비하면, 하드록 팬들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가장 힘든 반년을 보냈을 것이라 M씨는 감히 추측하는 바입니다. 작년 후반기에 좋은 앨범들이 많이 나왔던 여파일수도 있겠지만 말이에요.

서태지 [7th issue]
best : <Heffy End>, <로보트>, <10월 4일>, <F.M business>, <Outro>

서태지의 일곱 번째 앨범은, 사운드 상으로는 6집에서 리레코딩 앨범으로 이어지던 어쿠스틱한 흐름을 이어 받고 있고, 스타일 상으로는 뉴메틀 성향의 6집으로부터 얼터너티브 성향의 5집(또는 3집 일부)으로 반쯤 거슬러 올라간 위치를 보여 줍니다. 처음 앨범을 대했을 때는 큰 실망감을 감출 길이 없었는데,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밍밍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매력적인' 그리고 '전형적이고 극단적이지 않은 대신 복합적이고 낯선' 본 작의 특징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분적으로 보면 보컬은 너무 늘어지고, 기타는 흐트러지며, 베이스는 뭉개지고(녹음이 잘 못됐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드럼은 정신없이 바쁘기 때문에, 보컬에 중심을 둔 가요적인 감상법으로도, 리프나 그루브에 중심을 둔 록·메탈의 감상법으로도 도무지 예쁘게 봐 줄만한 구석이 없었다고 할까요. 팝으로는 보컬과 음악의 불균형이 귀에 거슬리고, 록으로서는 명쾌함이나 양식미가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때문에 가장 빨리 귀에 들어오는 곡은 상대적으로 전형적이고 낯익은 형식에 근접한 <10월 4일>과 <F.M Business> 같은 곡들입니다. <10월 4일>은 서태지의 여린 목소리와 애절한 멜로디에 어울리지 않는 과격한 기타 사운드나 갑작스런 속주가 배제되어 있고(물론 드럼은 여전히 부산을 떨고 있습니다만..), <F.M Business>는 바닥을 긁는 무거운 기타 리프와 긴장과 폭발을 반복하는 곡 진행이 이미 전작을 통해 익숙해진 스타일의 재현이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이 앨범'만'의 매력을 느껴보고 싶다면 <Heffy End>에서 <Live Wire>로 이어지는 전반부의 곡들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한발 뒤로 물러나 곡 전체를 하나의 객체로 바라볼 때, 지독히도 매력 없던 악기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무엇인가가 슬슬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한 곡 내에서의 '변화무쌍한 속도'와 '가볍고 경쾌함 - 무겁고 거칠음의 양극단을 오가는 변화'가 거의 미친년 널뛰는 수준에 육박함에도 불구하고, 결코 이어 붙였다는 단절감이 들지 않고 물 넣은 풍선 마냥 제 몸을 자유자재로 늘였다 줄였다 하는 느낌입니다. (리프나 프레이즈라는 측면에서는 볼 품 없었던 기타와 정신 사나운 드럼이 이 대목에서는 소절단위의 분절성이나 도식성을 없애주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흐름을 유지하는 자연스러운 연결에 대한 고려는 하나의 곡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앞 곡 혹은 뒷 곡과의 부드러운 이어지며 분위기 조성에 기여하는 짧은 연주곡들을 배치해 놓은 앨범 전체적인 관점에서도 발견됩니다.

결과적으로, 앨범 곳곳에서 발견되는 드럼앤베이스급 리듬 라인에도 불구하고(그간 솔로 앨범들을 통해 보여주었던 서태지의 음악적 정체성 중 하나인 일렉트로니카적 측면이 본 작에서는 드럼에 집중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까지 서태지의 앨범 중에서 가장 밴드적인 음악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악기들이 서로 각자의 라인을 가지면서도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만들어내는 하모니가 아니라, 홀로는 존립할 수 없어 보이는, 전적으로 곡 전체를 구성함으로서만 기능하는 하모니랄까요. 곡을 리드해나가는 악기 없이, 곡을 지탱해가는 악기 없이, 보컬을 포함한 모든 악기들은 그저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낼 뿐이에요. 아무튼 결론은 이 앨범이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야만 매력이 발견되는 음반이라는 겁니다. 곡이 구성요소들로 분해되지 않고 하나로 덩어리져서 마치 살아있는 듯 역동적으로 꿈틀거리는 이 음반의 음악적 성취도는 대단히 훌륭한 것이지만, M씨 개인적인 취향도 그렇고, 가장 큰 대중적 호응을 얻었던 아이들 시절 그의 음악 스타일도 그랬듯이, 다음 앨범에서는 그가 나무를 봐도 숲을 봐도 모두 매력적인 음반을 가지고 돌아오기를 기대합니다.




  목록보기   추천

이전글서태지 다시보기 핫뮤직
다음글서태지, 분열증에 빠진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김태서

Copyright 2000-2017 Taijiman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