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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는 서태지이기 때문에 존재한다.
길밖세상  2009-08-23 15:35:52, 조회 : 621, 추천 : 121

서태지는 서태지이기 때문에 존재한다.
출처:길밖세상


서태지는 서태지이기 때문에 존재한다
-서태지 텍스트, 서태지라는 내용과 표현방식.

말 많던 ETPFest(Eerie Taiji People Festival)가 지난 10월 26일 드디어 끝났다. 언론의 걱정(?)과는 달리 3만여명의 인파가 공연장을 가득 메웠고, 화려한 무대와 생생한 사운드가 락페스티벌의 분위기를 한껏 높였다. 그 많은 사람들과 점프! 점프!를 함께 하며 무대 위 밴드와 호흡을 같이하는 감동을 느껴본 적 있으신지? 서태지 말대로 이 날의 감동은 "평생을 지겹게 따라 다닐 즐거운 추억"이 될 것 같았다. 최소한 서태지 매니아들에겐 말이다.

작년 일본에서 열렸던 썸머소닉 페스티벌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실력 있는 밴드들과 함께 한 서태지는 최고가 아니었다. 그런데 서태지는 그 사실을 확인하고 확인 받기 위해 무대에 오르고 또 끊임없이 그런 무대를 기획하는 듯 했다. "나는 신화가 아니다. 단지 노력하는 뮤지션 중에 한 명일뿐이다. 갖가지 음악들로 가득 찬 이 곳에서 음악을 느껴라. 너를 느껴라.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느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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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를 여태까지 살아남게 한 건 서태지 자체가 가진 텍스트 때문이다"는 주제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나는 한동안 글을 쓸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ETPFest를 앞두고 언론들은 예매율과 서태지 신변잡기에만 집착하며 공연 죽이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초대형 락페스티벌의 진행과정은 서태지 팬들이 보기에도 혼란스러운 점들이 있었다.

서태지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살아남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할까? 그것이 스포츠 신문의 1면을 장식할만한 영향력을 유지한다는 것을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내 음악을 제대로 평가받고 싶다"는 것이 소원인 뮤지션 서태지는 과연 제대로 살아있기나 한 것일까?

'서태지답기'를 요구하는 다양한 세력들, 곧 쇼비지니즘에 쩔은 언론, 한국 락의 미래를 걱정하는 평론가와 락팬들, 이 사회의 '진보'를 전망하는 지식인들, 그를 '사랑'하는 매니아들 사이에서 진짜 서태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생산적인 논의를 위한 최소한의 합의도 없이 쏟아지는 수많은 서태지 독해 사이에서 내가 말하는 서태지 또한 결국 내가 만든 서태지 레고일 뿐이며, 이 역시 서태지는 아니라는 낙담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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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는 서태지가 표현한다.
어떻게 표현할지도 서태지가 결정한다.
서태지는 서태지이기 때문에 존재한다.
서태지를 바라는 사람들 때문에 존재한다.
그래서 싸운다.
(2000. 11. 24. 서태지 인터넷 방송 광고 문구)

결국 서태지가 표현하는 서태지 텍스트는, 서태지가 서태지이기를 바라는 사람들, 곧 매니아들의 이해에 기반 해 구성되는 것이 아닐까? 서태지를 통해 세상을 보고 서태지 정신을 배웠다는 매니아들. 이들이 10년 동안 보고 듣고 겪은 서태지는 음악에 미쳐 최선을 다하는 음악인이었고, 관습과 터부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청년이었으며, 권위와 타협 없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자연스레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도 매니아들에게 '삘'이 꽂힌 것은 서태지 음악을 통해 전해 오는 그의 소리였다. "떠나가 버린 많은 사람들과 비참히 찢겨버린 나의 외로움"(슬픈 아픔)이나 "고뇌를 넘어선 두려움이 내 피로 고통을 뿜어 올렸어"(ㄱ나니)라는 노랫말은 서태지가 겪었을 처절한 외로움과 고통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서태지는 곧 "죽기를 바라는 것처럼 너를 일으켜"(take three) "날 힘있게 다시 만들거야"(take six)라며 절망 끝에서 다시 일어선다. 그에게 "알 수 없는 혐의를 남긴" 언론(탱크)과 "사람을 캐는 세상"(take four) 대한 분노, 그러나 "보이는 길밖에도 세상은 있"다는(taijiboys) 믿음은 "모두를 뒤집어 새로운 세상이 오길 바라"게(시대유감) 만들고 "젊은 우리 힘이 모이면 세상을 흔들 수 있"다는(발해를 꿈꾸며) 기대로 이어진다. "갇혀 있던 그 벽을 올라설 때 누구도 알 수 없는 미래가"(take one) 있다는 발견, 비로소 서태지는 "이 넓은 세상을 느끼는 강한 네 모습"(take five)으로 거듭난다.

"세상과 말하고 싶을 때 서태지는 소리를 던진다"는 서태지의 말처럼 음악은 그가 세상에 말을 걸고 자신의 생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강력한 매개체이다. 소리에 실려 묻어 나오는 서태지와 평소의 말과 행동에서 보이는 서태지가 일치한다는 발견이 주는 묘한 울림, 그 울림은 매니아로 하여금 서태지를 이해했다고 믿게 하는 한편 서태지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한다. 그 순간 서태지 정신은 나의 것이 되기도 하며, 서태지 정신은 새로운 의미들로 업그레이드하여 다시 구성된다. 서태지에게서 비롯된 서태지 정신은 이제 서태지와 매니아들의 정신이 되는 것이다.

매니아들이 그토록 '극성스럽게' 나서는 것도 자신의 성장기를 지탱해 주었던 서태지 정신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권위주의와 위계질서로 오염된 한국 사회는 서태지의 '모남'을 못견뎌 하고, 천박한 자본의 논리만 좇는 언론은 서태지의 '상업주의'를 공격하며 상업적 이익을 챙기기에 혈안이다. 일부 락팬들은 서태지가 아이돌 스타로서 그의 기반을 다졌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서태지의 진정성을 의심할 뿐만 아니라, 주류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 중 하나라는 이유로 그를 거침없이 쇼비지니즘 시스템과 동급으로 올려놓는다. 서태지 텍스트를 전유하려는 어떤 시도 속에서도 매니아들이 이해한 서태지는 없다.

매니아들은 서태지 담론 투쟁에서 패배함으로써 서태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그럼으로써 자신의 모습을 비춰왔던 거울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빠진다. 이들은 곧 집단적인 힘을 발휘하게 되는데, 이때의 원동력은 비상식적인 세상이 배반하는 서태지를 지켜주고 싶다는 정의감이다. 그리고 대중문화의 주체로서 자신들이 지닌 힘을 자각하곤 서태지 정신에 자부심 하나를 더 얹는다. 서태지 정신은 더욱 예각화되고, 매니아들은 서태지에게도 서태지 정신을 지켜달라고 주문한다.

재미있는 것은 '서태지다워 달라'는 매니아들의 주문에 거리를 두는 서태지의 태도이다. 서태지는 "너희들은 수천 수만의 또 다른 나, 나침반 친구가 되자"(2000. 11. 24. 인터넷 방송 중 메시지)고 하여 매니아들을 감동시키는가 하면, 최근에는 "[사람을] 믿은 적이 없기 때문에 배신당한 적도 없다"(중앙일보. 2002.10.15.)고 발언하여 여러 매니아들을 서운하게 하였다. 그런데,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이러한 태도 속에 가장 서태지다운 모습이 엿보인다.

컴백이후 서태지의 행보를 돌이켜보면, 서태지는 은퇴기간 동안 단단히 결심한 무언가를 차곡차곡 실현해 가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자기 음악의 생산과 제작, 보급을 통제하는 한편 자기 이름을 내 건 회사와 인터넷 사이트를 여는가 하더니, 제대로 된 국제 락페스티벌까지 기획하고 개최하였다. 모두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것들이었고 예외 없이 비난과 공격이 쏟아졌으나 서태지는 이 또한 예상한 듯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은퇴이전보다도 적극적으로 '저항'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가 매니아들에게 동질감과 신뢰감을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매니아들은 서태지의 음악을 가장 많이 듣고 해석하는 집단이었으며, 서태지가 서태지가 되는 데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였다.

그러나 이들 또한 서태지를 욕망할 뿐이지 서태지는 아니다. 매니아들은 서태지와 과정을 함께 하면서 수많은 논쟁을 벌여 왔고, 그때마다 드러나는 건 그들 마음 속에 각각의 모습으로 자리잡은 서태지였다. 서태지는 그들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되, 선택은 언제나 서태지 방식에 따라 해 왔고, 그것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자유와 도전의 형태를 띤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먼저다, 미안하지만 팬들은 그 다음이다"(중앙일보. 2002.10.15)는 그의 말에 매니아들이 열광하는 건, 그들이 생각 없는 '빠순이'라서가 아니라 그것이 가장 서태지답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것이 가장 팬들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서태지는 '우리 서태지'와 '서태지' 사이의 긴장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우리 서태지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서태지의 실패를 바라는 사람들과 그의 실패를 걱정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태지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실패는 재능의 또 다른 기회라고 여유 있게 말하는 그 앞에서 신화니, 전설이니 하는 과거형 찬사는 우스워 보인다. 서태지가 왜 도전하고 저항하는지, 그 이유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과잉된 말잔치로 그에게 족쇄를 채우려 하지만, 나는 늘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는 서태지를 지켜보는 것이 즐겁다. 음악에 미친 한 청년이 꿈을 이뤄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흐뭇하다. 서태지 자체로 가득 찬,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성찰하게 하고, 저항하게 하고, 소외된 이들을 사랑하게 하는 그의 음악을 듣는 것이 행복하다. 서태지 음악에 담긴 정서를 잃지 않는 한 서태지는 영원히 서태지로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음악을 듣고 싶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선 싸워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 또한 안다.

서태지, 네 멋대로 해라! 우린 네 편이다.

길밖세상 (susha@seotaiji.com)

* 이 글은 답안지님, 민티, 연적, 마네, 샤리님의 도움을 얻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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