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추천글



ROCKER 서태지
핫뮤직  2009-08-23 15:35:32, 조회 : 622, 추천 : 110

ROCKER 서태지
출처:핫뮤직


ROCKER 서태지

신중현, 산울림, 조용필, 사랑과 평화, 들국화, 김수철
한국 대중음악사에 획을 그으며 큰 공헌과 함께 대중에게 열광 받는 스타 반열에 섰던 굵직한 뮤지션들도 많았지만 서태지만큼 화려하게 사회적 이슈와 더불어 Spot Light를 받았던 사람은 없었다. '문화 대통령', '한국 문화의 최고권력', '혁명가',..등 서태지에게 따라붙는 온갖 수식어에 대해서도 기성인들 조차 무덤덤 하게나마 그러려니 하니 음악인으로서의 서태지의 화려한 위상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단서를 다는 것은 이미 그 의미를 잃은 일인지도 모른다. 척박한 환경속에서 한국 대중음악의 수준과 위상을 끌어올린 록 계의 대부 신중현이나 가요 역사상 가장 폭넓은 대중의 지지를 받으며 '국민가수'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조용필조차도 그러한 최극상의 수식어를 받아내지 못했으니 말이다. 어찌되어던 뮤지션으로서의 위상문제를 떠나 서태지는 확장된 영상매체를 통한 음악환경을 잘 활용한 불세출의 엔터테이너임에 틀림이 없다.

서태지는 그가 원했던 원치 않았던 한국 대중음악계에 큰 공헌을 하였고 동시에 큰 빚도 졌다고 생각한다. 그의 음악적, 마케팅적 성공은 대중음악문화에 곱지 않은 시각을 갖고 있던 보수적인 기성인들과 정부의 문화 정책자들의 시선과 자각을 이끌었고 대중음악인들을 '딴따라'에서 '뮤지션'으로 격상시켰으나 동시에 대중음악이 10대들의 댄스뮤직 이외의 장르에서 일제히 고사하여 결과적으로 20대 이상 성인들이 가요에서 등을 돌리게 되는, 문화의 암흑기도 초래하였기 때문이다.(서태지가 댄스가수라는 말은 아니다.) 후자는 물론 음반기획자나 대중매체의 천박한 상업자본의 결탁에 기인한 일이지만 서태지가 그 경향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원죄선상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 서태지가 이끌었던 사회적 영향력 이외의 의미에 대해서까지 언급할 생각은 없다. 단지 서태지가 그랬고 지금도 상당부분 식지 않은 열기를 끌고 다닌다는 것이다.

서태지가 그의 출생지로 돌아와 라이브 록밴드로서 활동을 재개했다. 동시에 음반 기획자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할 것임도 시사하였다. 이러한 서태지의 행보가 어쩌면 한국 록계에 커다란 활력을 주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더불어 이로 인해 나타나는 몇 가지 현상들 때문에 생기는 기우가 이 글을 쓰게 만든다. 앞서 언급했듯이 본인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영향력 있는 공인의 행보와 언행은 그 파급이 크기 때문이다.
기우에 의해 지적하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서태지가 갖는 일련의 컴백 콘서트가 록 매니아와 서태지 팬들 사이에 소모적인 논쟁과 인식의 골을 야기한다는 것이고 둘째, 서태지 또는 서태지 측근의 연출이나 언행이 열악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록 뮤지션들을 뒤흔들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문제는, 서태지가 자신의 록 관련 콘서트 연출 후에 "대중을 잃고 매니아를 얻었다."고 선언했는데 이 부분에 문제가 있다. 서태지는 자신의 음악적 태생의 본능으로 록 필드를 찾았는지 모르지만 함께 어울리는 축제의 장을 만들지 못하고 록 뮤지션들을 연출용 소품으로 전락시킴으로써 자신의 팬들을 록으로 안내하지 못하고 다수의 록 매니아들로부터 거리감을 넓히는 부작용을 낳았다. 하다 못해 댄스나 발라드 가수라 하더라도 차별화 된 자신의 음악이라고 말하고자 한다면 자신의 밴드의 연주색깔로부터 지지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하물며 라이브로서의 록은 그 하나된 밴드가 생명이다. 서태지가 음악을 만드는 파격과 독창성을 떠나서 서태지 밴드는 그들의 음악이라고 하기엔 밴드가 함께 한 기간이 미천하기 때문에 여느 숙달된 언더그라운드 록밴드의 연주 수준의 반열에 함께 있다고 봐야 한다.

서태지가 한국 언더 록 필드에 눈길을 돌린 것까지는 좋았지만 비좁은 오프닝 스테이지에 리허설 시간마저 확보해 주지 않아 물의를 일으켰던 일전의 공연행사와 같은 방식은 지양되어야 한다. 이는 록 그룹들과 매니아들의 자존심을 지켜 주지 못함은 물론 서태지 팬들에게 다양한 록의 매력을 전달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같은 스테이지에서 함께 즐기며 음악과 연주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겸허함만이 함께 세계수준을 겨냥하는 리더의 자격을 부여받게 할 것이다. 서태지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록커로서의 서태지는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서태지 컴백 이후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서 반복되는 서태지 팬들과 록 매니아들 사이의 설전은 음악적 담론의 범주를 완전히 이탈한 감정적 흠집내기로 일관되고 있으니 그 원인의 상당부분은 서태지 공연 연출상의 실수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서태지가 한국 언더 록 필드에 대한 애정을 표현해서인지 한동안 록 공연장에 서태지 팬들의 지원성 방문이 이어지다가 이제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을 보면 서태지가 먼저 록 매니아들에게 인정받는 록커가 되어야 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같은 의미에서 이번의 '2002 ETPF' 행사의 타이틀과 형식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겁나는 태지 사람들의 행사'에 록 매니아들을 초대한다는 뜻인지 모르지만 알려지고 있는 행사 개요를 보면 서태지 밴드가 세계적인 록커들과 조인트 콘서트를 하니 한국의 록커들은 와서 축하공연을 하라는 형식으로 읽힌다. 서태지 밴드가 라이브로 그 큰 무대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인정받는지는 모르지만 구설수는 또 시작되고 있다는 점도 감안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두 번째로 지적하고자 하는 문제는 서태지 측의 신중하지 못한 방식과 처신이다.
이는 진정한 '언더'이지 못한 록 뮤지션들이 손쉬운 성공에의 유혹을 떨구지 못하는 병폐가 함께 작용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서태지로의 '발탁'이 '큰 은총'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대부분의 고생스러웠던 뮤지션들을 질책하기엔 너무 이상적 도덕주의의 강요일 듯 싶기 때문에 약간의 무리를 무릅쓰고 힘있는 자에게 하는 요청이다.

우선 간접적인 문제를 하나 지적한다면, 서태지의 음악활동을 위한 프로젝트팀에 연루가 되었던 밴드들이 해체되는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 어느 그룹이던 멤버의 교체나 스카우트가 없지 않은 일이고 보면 음악적 경향과 이상을 찾아 멤버가 이동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상황에서 보면, 그 현격한 위상의 차이 때문에 '은총'을 입은 멤버의 자리이동은 부럽기 전에 질시까지 생기는, 그러나 말릴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핵심 멤버를 잃은 그룹이 표류하다가 좌초하는 경향이 짙다는 점을 최소한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언더 록 필드가 탄탄한 자생력을 갖추려면 중견 그룹들이 활발히 활동하며 후발 그룹과 매니아들을 리드해야 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허리가 끊기는 현상인 셈이다. 몇 몇 그룹의 문제로 호들갑스럽게 록 필드의 저변을 격하한다고 할 지는 몰라도 이는 록의 저변 구축에 함께 동참하는 클럽 관계자들이 당장 느끼는 불편함이기도 하다. 서태지 밴드나 록계를 위해서 서태지의 고정 멤버로서의 그룹형성이 중요한 이유인 것이다.

보다 심각한 것은, 일반 그룹 특히 제작자가 있어서 계약관계에 묶여 있는 그룹들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제작자와 계약을 맺고 타 그룹의 부러움을 사면서 잘 활동하다가 갑자기 불공정 계약 또는 계약 위반을 내세워 제작자들에게 계약백지화를 요구하며 무리를 야기하고 있는 그룹들도 있는데 공교롭게도 이 시기를 전후하여 이들 그룹 뮤지션들이 서태지 컴퍼니에 출입하거나 관계자를 만났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만나서 무슨 말들이 오갔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하는 부분적인 말과 증언들은 당사자들과의 불필요한 시비와 분쟁을 만들려는 뜻이 없기 때문에 생략하지만 해당 뮤지션들이 대단히 고무되거나 흔들렸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한때 언더 록 필드가 음악계의 새로운 대안이라고 생각했는지는 모르지만, 하다못해 이름있는 댄스전문 제작사들 까지도 록커나 록 그룹을 저인망으로 훑어 제작에 나서기도 하고 계약으로 묶어 놓기도 하다가 기대이하의 마케팅 결과에 실망하여 대책없이 방치하는 파행을 저지르기도 했고 지금도 또한 나타나는 현상이다. 록 밴드에 관심을 갖는 제작자가 많아 활발한 음반제작과 더불어 이 업계가 활황이 된다면 두 손을 들고 환영을 할 일이지만 이렇게 우려스럽게 지적하는 것은 제작자들이나 뮤지션들이 쉬운 성공을 염두에 두고 조급하다는 문제 때문이다.
너무 쉽게 음반을 내고 너무 쉽게 포기하는 되풀이가 록계의 건실한 발전에 저해가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밴드와 이 시장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제작자와 꾸준한 밴드활동의 인고를 거친 중견 그룹이 늘 아쉬운 것이고 상술했던 문제의 밴드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제작자와 비교적 건실한 결합 속에 동고동락하면서 앞으로가 기대되던 중견이었던 것이다.

엄연히 계약서가 있어 서로가 구속되어 있고 이미 제작자 입장에서 투자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조건 계약을 풀어달라고 요구하는 어리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뻔히 알 듯한 뮤지션들이 제작자들과의 대화를 닫아 놓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계속 음악은 하겠다고 하면서 뮤지션으로서 위험할 수 있는 법적 결과까지 감수하는 이면에는 정당한 트레이드 머니를 아끼려는 무모한 3자의 개입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당연한 것이고 서태지 측이 아무 개입이 없었다 하더라도 관행을 무시하는 밴드들의 이해 못할 행동 속에서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현장에 있게 된 셈이다. 이것 만으로라도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매사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핫뮤직' 잡지에 12년 동안 관여하면서 늘 우리 록계의 계보가 끊김을 안타깝게 생각해 왔다. 열악한 환경에서의 밴드들의 짧은 생명력이 문제였다는 생각이다. 밴드들의 기반이 되어야 할 클럽의 활성화를 위해 '식품위생법 개정을 위한 서명운동'도 해 봤고 보다 실효성 있는 법안으로의 재개정과 많은 건실한 록 페스티벌의 정착을 위해 노력도 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문제는 록계 제 1선의 담당자들의 문제일 것이다.

어차피 록 밴드라면 철저히 '언더'를 지향하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 '오버'를 지향하다 안 되니 '언더'가 아니라 철저히 자기 음악세계를 즐기는 뮤지션이어야 한다. 자기 세계에 몰입하다 보니 팬들이 확대되는 것이고 그러다가 보니 '스타'도 되는 것이다. 천재가 아니라면 길게 보아야 할 것이고 경제적인 문제를 위해 다른 직업이나 아르바이트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굳이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를 비교하지 않더라도, 어떤 분야에서든 인정받는 스타가 되기란 말 그대로 '별따기'처럼 어려운 일 아닌가. 서태지도 한국에서 그렇게 자신의 별을 딴 사람일테고, 뮤지션이라면 남의 힘에 의존하지 않는 창조자의 길을 걷는 자부심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록커 서태지'는 록계의 후배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계보있는 선배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목록보기   추천

이전글서태지는 서태지이기 때문에 존재한다. 길밖세상
다음글<인터뷰> 이것은 인터넷이 아니다! 마이폴더넷뉴스

Copyright 2000-2017 Taijiman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