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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것은 인터넷이 아니다!
마이폴더넷뉴스  2009-08-23 15:35:16, 조회 : 713, 추천 : 122

<인터뷰> 이것은 인터넷이 아니다!
출처:마이폴더넷뉴스

박종훈 아틀라스 리서치 선임연구원

연말연시의 달뜬 기분이 이제사 사위어 가는 것 같습니다. 해마다 전쟁 같은 연말 술자리를 치르고 나면 연초에 남는 것은 속쓰림과 언제 그었는지 모를 신용카드 대금서 뿐이지만 올해는 한 가지가 더 남아 있더라구요. 3년 만에 만난 후배 녀석이 자신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라며 건네준 비디오테이프가 가방 속에 있었습니다. 사인이라도 넣고 증정이라고 써서 주었으면 술자리가 꽤나 흐뭇했으련만, '돈내고 봐'와 '치사빤쓰'라는 격렬한 설전 끝에 2만원을 주고 가방에 쑤셔넣어 두었던 것입니다.

근 열흘 만에 가방 속에서 나오게 된 비디오테이프는 '영상으로 쓴 팬덤 문화 보고서, 이것은 서태지가 아니다'라는 제법 긴 제목을 달고 있었습니다. 후배 녀석이 비디오테이프 케이스에 적어놓은 소개글을 대략 줄이면 이렇습니다.

"팬덤(fandom) 안과 팬덤 밖의 거리는 그만큼이나 멀다. 이 다큐멘터리는 우리나라 팬덤 문화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서태지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울고 웃고, 환호하고, 분노하고, 열광하고, 상처받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기성의 질서에 도전하면서 또 그들 내부에서 서로 싸우고 위로하면서 1년 반 동안 너무도 빨리 변해버린 서태지팬들... 한국에서는 처음 만들어지는 팬덤에 관한 영상 보고서이다.

영상물을 이해하는 데 도움되는 한마디를 덧붙이면, 이 영상물에서 '주인공'이나 핵심 인물을 찾지 말라는 것이다. 이들은 대표도 없고 대표하는 팬클럽도 없다. 익명의 개인들 그리고 다양한 관심과 연령과 지역과 다종다양한 인연으로 만들어진 수백여 개의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존재할 뿐이다."

영화는 서태지가 아닌 서태지 팬들의 변해가는 모습을 담고 있으며, 서태지 팬덤이 성장할 수록 역설적으로 서태지라는 존재가 점차 희미해져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태지매니아 vs. 노사모

2002년에 주목받은 두 개의 팬덤은 단연 붉은악마와 노사모입니다. 월드컵 이후 전국민적인 팬덤 붉은악마가 언론의 경쟁적인 스폿라이트를 받았다면, 대통령 선거 이후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노사모입니다. 1997년 DJ 당선때만 하더라도 방송과 신문에서 현대판 용비어천가들을 내보냈었는데, 시대가 바뀐 탓인지 이번엔 대통령 당선자에 관한 이야기는 쏙 들어가고 노사모에 관한 특집 프로그램들만 줄을 잇고 있습니다.

아무튼 노사모에 관한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저는 서태지 팬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자연스레 떠올릴 수 밖에 없었는데, 왜냐하면 서태지와 노무현이 얼마나 비슷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태지매니아들과 노사모는 놀라우리만큼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공통점은 팬덤 내부에서 점차 서태지가 없어지고, 노무현이 없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태지에 미치고, 노무현에 미쳐서 목청껏 외치고 온몸을 내맡겼더니 어느 순간 서태지나 노무현의 존재가 그리 중요해지지 않게 되는 때가 오더라는 것이죠. 서태지 팬덤에서 서태지가 중요하지 않다면, 노사모에서 노무현이 중요하지 않다면, 과연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온 것은 무엇일까요?

#2. 붉은악마 vs. 범대위

광화문은 이제 광장 문화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붉은악마들로 넘쳐났던 6월의 광장에는, 이제 수만의 반딧불이들이 따뜻한 빛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러나 붉은악마와 촛불 시위의 광장 문화는 전개 양상이 사뭇 다릅니다.

처음 몇천 명, 몇만 명으로 시작된 붉은악마 응원은 나중엔 전국의 길거리에서 700만 명의 국민들이 하나로 어울릴 만큼 걷잡을 수 없이 커나갔습니다. 그러나 여중생 추모 촛불 시위는 안타깝게도 점차 그 빛이 사그러들고 있으며, 이제는 아름답게 마무리를 해야할 때라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촛불 시위가 붉은악마 응원처럼 시간이 갈수록 확산되지 못하는 이유로 '여중생 사망 사건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의 타성에 젖은 시위 문화를 지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몇몇 연사들이 단상 발언을 하고, 구호 몇 번 외치고, 미국 대사관으로의 진입을 시도하며 전경과 몸싸움을 벌이는 천편일률적인 범대위의 시위 방식은 붉은악마, 태지매니아, 노사모가 보여준 것 같은 자생적이고 폭발적인 힘을 이끌어 내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촛불 시위는 시작부터 범대위 중심과 네티즌 중심의 두 축이 상충하며 전개되어 왔고, 네티즌 측은 '범대위, 네티즌을 믿어라' 등의 호소문을 통해 촛불 시위 현장에서 SOFA 개정과 반미를 넘어서는 네티즌들의 자유롭고 다양한 메시지 전달과 시위 방법이 표출될 수 있도록 범대위가 협조해 줄 것을 끊임없이 요청해 왔습니다.(네티즌의 호소문을 읽고싶으신 분은 http://www.ddanzi.com/ddanziilbo/93/93p_5603.asp 링크)

그러나 범대위 측은 범대위 게시판의 접근을 제한하고, 게시판에 올라온 범대위에 대한 비판의 글을 삭제하는 등의 상식 밖의 행동을 보였으며, 네티즌에게 약속한 자유로운 촛불 시위 방침을 뒤엎고 범대위 방식의 시위를 계속 고집하다 공권력의 침탈과 언론으로부터 비난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3. 전통 미디어 vs. 인터넷

노무현의 승리와 이회창의 패배를 분석하는 기사들이 빠지지 않고 서두에 언급하는 것은 바로 인터넷입니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그러나 이회창 후보측은 과연 선거전에서 인터넷을 조금 밖에 활용하지 않았을까요? 그보다 먼저, 인터넷을 잘 활용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인 것일까요?

저는 우리가 관심을 갖고 보아야 할 것은 인터넷이 아니라 우리 사고와 행동의 인터넷적인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태지매니아와 노사모의 가장 큰 공통점으로 어느 순간 스타가 사라져버리는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럼 스타의 빈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은 무엇일까요? 태지매니아와 노사모는 그것은 바로 '나 자신, 그리고 나와 소통하고 있는 우리(community)'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적인 패러다임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디어로서 인터넷이 가져온 가장 커다란 변화는 관심의 방향을 나 자신으로 향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산업 시대의 미디어인 책, 신문, TV는 불특정 다수의 관심만을 다루는 데 능숙합니다. 소수의 사람에게 유용한 정보들은 이들 미디어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은 다릅니다. 정보의 분류가 쉽고 정확해지고 정보 생산과 유통의 비용이 제로로 가까워지게 되면서, 인터넷은 대량 생산 메커니즘을 포기하지 않고도 개개인의 관심을 소중히 다룰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터넷이라는 스타를 중심으로 모인 네티즌이라는 팬덤은 TV와 신문의 팬덤과는 달리 나 자신, 그리고 나와 소통이 가능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태지매니아들과 노사모들이 그랬던 것처럼 네티즌도 어느 순간 인터넷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속의 나와 커뮤니티가 진정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나와 커뮤니티에 대한 관심이 중요한 이유는 삶의 진정한 원동력인 '열정'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노사모와 네티즌의 승리는 인터넷을 잘 이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나와 우리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인터넷 속에서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과 범대위가 저지른 치명적 실수는 인터넷을 TV나 신문과 유사한 또 하나의 미디어로만 이해했다는 것이고 네티즌을 객체로만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홈페이지와 게시판 운영, 그것은 인터넷이 아닙니다.

#4. 네티즌과 함께 호흡하기

초고속 인터넷 1000만 가입자 돌파, IMT-2000 상용화에 따라 2003년은 인터넷과 무선인터넷 비즈니스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한해가 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을 현실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런 인터넷의 외적 조건이 아니라 인터넷적인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 패턴을 항상 염두에 두는 일일 것입니다.

인터넷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네티즌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티즌들이 함께 비즈니스를 만들어 나가도록, 그들의 열정이 자유롭게 분출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사람들, 다양한 관심과 다종다양한 인연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커뮤니티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경청하고 그들이 원활히 소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입니다.

네티즌과 함께 호흡하는 것, 이것은 2003년 인터넷 비즈니스에 있어 가장 강력한 시장 진입 장벽인 동시에 핵심역량이 될 것입니다.

글쓴이 : 박종훈 아틀라스 리서치 선임연구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전공을 살려 사회에 진출했다. 인터넷 시대를 예견하고 창업한 선배의 꼬임에 빠져 IT 업계에 몸과 마음을 담게 놓았다. 벤처기업인 테크노2000프로젝트와 K4M에서 XML 기반 e-비즈니스 솔루션의 기획과 마케팅 일을 했고, 지금은 통신 전문 리서치 회사인 애틀러스리서치그룹의 선임연구원으로 있다. 차세대 인터넷의 생김새와 쓸모를 궁금해 하고 있으며, IT와 문화라는 두개의 나선이 어떻게 서로 얽혀 있는지에 대해 가끔씩 궁리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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