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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10년
매일경제  2009-08-23 15:33:51, 조회 : 572, 추천 : 120

서태지10년
출처:매일경제 기획




[매일경제] 2002-04-10 3125자  
[기획취재] 서태지 10년!  

‘서태지’라는 단어는 가수 이름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별 사건이 아니어도 그의 이름이 들어가면 빅 뉴스가 되어버린다.
데뷔 후 10년, 그가 세상에 남 긴 것들로 인해 그의 10년은 한 개인의 역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1992년 4월, 그가 ‘난 알아요’를 들고 나와 TV에서 ‘요상한’ 춤을 추며 ‘랩’이라는 것을 내뱉었을 때 사람들은 당황했다.
당시로서는 너무나 생경 했던 랩과 강한 비트에 맞춰진 춤은 싫고 좋은 것을 떠나 놀라운 것이었다.
그리고 이 ‘놀라운 것’은 새로움에 목말라하던 신세대들의 욕구에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일렉트릭 기타와 태평소가 섞인 2집의 ‘하여가’, 우리 교육 현실을 정면으 로 꼬집은 가사를 ‘지하의 시끄러운 음악’으로 표현한 3집의 ‘교실 이데아 ’, ‘힙합’이라는 문화를 정면으로 끌어올린 4집의 ‘컴백홈’, 그리고 ‘ 하드코어’로 포장된 ‘울트라맨이야’까지. 서태지의 음악은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다.
또 그는 대중가요가 사랑타령만 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 ‘교육’ ‘가출 ’ 등 다양한 소재를 담아낼 수 있음을 보여줬다.
사람들이 한번쯤 생각했던, 외치고 싶었던 말을 서태지는 세상에 내뱉었고, 숨겨왔던 자신의 생각을 ‘알 아준’ 노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그의 노래가 아니라 ‘나의 노래’가 되었 다.
서태지 이후 가요계는 변했다.
‘똑같은 걸 하는 게 지겨워서’라는 말로 그 는 매번 새로워지는 음악의 이유를 설명하지만, 그의 음악은 분명 정체될 수 있었던 우리 가요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트로트와 발라드가 주류를 이루던 가요계에 댄스 음악이 발을 들여놓게 됐다.
그전에 비해 그룹이 압도 적으로 많아진 것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의 음악에 대해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가 끊임없이 다양한 음악 을 시도하려 했던 것과는 달리 그 후의 가수들은 춤만 추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댄스음악 외에는 어떤 음악도 주류로 일어설 수 없었다.
그리고 이로 인 해 가수들은 만들어지는 상품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굳이 이 비정상적인 가요 발전의 시초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서태지의 이름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난 알아요’와는 전혀 다른 음악을 하고 있는 그를 보면, 모든 책임을 그에게 돌릴 수만도 없는 일이다.
* 자유와 다양성을 생각하는 사회 그는 ‘하여가’를 들고 나왔을 때 머리에 염색을 했었다.
공중파 방송국은 이것에 제재를 가했다.
이에 그는 수긍하고 다시 검은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후 방송을 했다.
그 후 3집 ‘발해를 꿈꾸며’. 이번에는 너풀거리는 스커트 가 문제였고 방송국 측에서는 다시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이번에 그는 스 커트를 벗지 않았고, 아예 방송 출연을 하지 않았다.
그 후 가수 김원준이 엄연히 치마를 입고 나와 춤을 췄던 것과 요즘 대부분의 가수들이 희한한 색의 머리로 나오는 것을 생각하면 참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 당시엔 ‘텔레비전에 나오려면 머리 색깔은 검어야 하고, 남자는 치마를 입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서태지는 ‘안 되는 것’이 사실은 ‘안 하고 있는 것’이라는 걸 몸소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 스스로 ‘자식 같은 노래’라고 부르는 ‘시감’. 아마 ‘서태지’라 는 이름을 거론할 때 두고두고 따라다닐 노래일 것이다.
95년, 공연윤리 위원 회는 ‘가사가 너무 부정적이어서 대중의 정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며 ‘시 대유감’을 ‘부적절한’ 노래로 찍어버렸고, 그는 아예 가사를 빼고 연주곡 으로 수록했다.
사실 그 이전에도 공연윤리 위원회의 사전 심의가 있었고, 그로 인해 고쳐진 노래는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서태지처럼 대처한 사람은 없었다.
파문은 점차 커져갔고, 급기야 국정검사에 이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리고 6개 월의 시간이 지나 음반의 사전 심의와 사후 처벌을 완전 폐지하는 법률 수정 안이 통과됐다.
이 사건은 가요계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이전까지 당연하게 여겨졌던 ‘심의’라는 것은 전혀 당연한 것이 아 니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서태지는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해왔던 방식’으로부터 조금씩 어긋났다.
‘ 다들 그렇게 하니까 한다’는 식의 생각에 과감히 반기를 들었다.
그는 틀에 박힌 ‘가수’ 서태지가 아닌, 자유로운 가수 ‘서태지’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다행히 그만의 아집이나 독단이 아니었다.
* 팬(FAN), 또 하나의 문화 계층 그의 팬들은 굉장히 조직적이다.
서태지의 노래를 외국에 알리기 위해 글을 작성하고, 그것을 영어, 일어 등으로 번역해 외국 사이트에 올리는 것을 각각 유기적으로 진행한다.
‘시대유감’ 사건 당시 온·오프라인에서 사전 심의 반대 여론을 조성했고, 작년 이재수의 ‘컴배콤’ 패러디 논란 당시에는 비상 대책위원회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이들이 좋아하는 스타를 옹호하는 일만 하 는 것은 아니다.
96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하고 나서 생긴 단체가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 기념사업회’(이하 서기회). ‘서태지와 아이들을 기념하는 청소년 문화단체 ’라는 이 단체는 해체 선언 후 한 달도 되지 않아 팬클럽 회장들이 모여 결 성됐다.
서울시에 문화단체로 등록하며 사무실까지 오픈해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신기한 건 서기회의 이후 행보다.
이름에 ‘서태지’를 달고 있지만 서태지와 관련된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에 성금도 보냈고, 청소년 보호법에 대한 성명서 발표와 서명운동을 전개했으며, 대중음악에 관한 특강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들은 자신이 하는 모든 것들을 서태지로부터 배웠다고 말한다.
인생에서 어 떤 것을 주저하고 있을 때 과감히 용기를 갖고 추진하라고 가르쳐준 사람이 바로 서태지란다.
서태지 팬들의 행동은 눈에 띌 수밖에 없었으며, 최근 ‘이것은 서태지가 아 니다’라는, ‘서태지 팬들’을 주인공으로 한 단편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이들로 인해 팬은 단지 가수에 열광하는 ‘오빠 부대’가 아닌, 그 가수의 든 든한 후원자이자 문화의 주 소비층이며,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 신인류’가 된 것이다.
god 팬클럽 회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전단 지를 돌린 것도 이런 팬 문화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태지의 팬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며 말을 맺는 그들. 서태지는 이들을 자 랑스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박은경 기자 gorgeoustar@mk.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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