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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
강명석  2009-08-23 15:32:54, 조회 : 613, 추천 : 117

벌써 10년?
출처:트리플크라운




아무래도 이번주 연예가 최대의 화제는 서태지가 될 듯 싶다. 부끄럽게도 필자가 나왔던(2시간넘게 얘기했으나 나온건 A4지 한 장도 안된) 언론사의 대담이나 주간지의 특집기사같은 '데뷔 10주년'기념 기사들을 비롯해 신인가수 휘성에 대한 서태지의 코멘트(그의 사서함을 통해 휘성을 인정한 것은 사실인 것으로 확인됐다)에 대한 진위여부, 그리고 서태지컴퍼니와 엔터테인먼트 그룹인 예당과의 전략적제휴등 서태지와 관련된 소식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데뷔 10년동안 여전히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인물로 남아있다는 것도 흥미롭지만, 늘 인기가수이면서도 '마이너리티'의 정서를 대변한다는 평가를 받던 그가 데뷔 10년만에 메이저 엔터테인먼트 기업과 손을 잡으면서 정말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것도 참 흥미롭다. 10년이라는 세월동안 서태지도 변하고 서태지를 둘러싼 세상도 변했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이번주에는 1992년이후 있었던 대중문화계의 변화에 대해서 다뤄보았다.



1. Genre



  a. 변화 : 서태지와 아이들이 내세운 것은 랩이었다. 물론 그당시의 음악들이 지금과 같은 랩음악의 형태를 띈 것은 아니었지만, '외국에서나 하는' 음악같았던 랩음악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한국은 전세계 음악시장과 어느정도 같은 흐름을 가지고 흘러가게 되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들고나왔던 랩은 이후 두가지 모습으로 분리되는데, 하나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난 알아요'나 '죽음의 늪'등에서 보여주었듯 랩과 멜로디의 결합으로 주류 댄스음악의 한가지 요소로 쓰이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랩자체가 중심이 되어 힙합음악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전자의 경우는 한국을 거쳐간 수많은 장르들, 이를테면 서태지와 아이들의 '랩댄스'로부터 R.ef가 내세웠고 다시 90년대 말에 등장한 테크노, 그리고 최근의 R&B에 이르는 장르들에 섞여 들어가서 작곡가들에게 여러모로 대중적인 곡을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될 하나의 수단이되고 있고, 후자의 경우는 마치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의 록처럼 숱한 논쟁을 겪으면서 한국형힙합으로서 조금씩 그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러는사이 이뤄진 것은 역시 장르의 분화다.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의 인기장르는 발라드와 트롯 두종류였다. 하지만 지금은 신승훈이 이어가고 있는 전통적인 의미의 발라드에서부터 팝, R&B등으로 발라드도 세분화되었고, 록역시 그냥 '머리기르고 기타치는' 음악에서 '그나마' 핌프, 하드코어, 헤비메틀, 비쥬얼록, 얼터너티브 록등의 단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b. 변하지 않는것 :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장르가 어떻게 수입되건간에 한국을 지배하는 것은 여전히 '조용한 노래', 아니면 '빠르고 신나는 노래'라는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1,2집은 대중음악의  흐름을 바꾸는데 큰 역할을 했지만, 이후 3집과 4집, 그리고 서태지의 솔로 앨범들은 대중음악의 트랜드를 바꾸지는 못했다. 대중은 여전히 듣기 편안한 음악아니면 신나게 놀 수 있는 음악들을 좋아한다.



이것은 장르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의 문제다. 이승환의 앨범에 아무리 록음악트랙들이 많고, 냉소적인 가사가 많아도 대중들은 그의 발라드를 더 좋아하는 경우가 많고, 싸이의 '새'같은 노래만되도 그것은 '엽기'로 분류되곤 한다. 한국에서 슬프거나 즐거운 감정이외에 개인적인 분노나 광기가 대중적인 공감을 산적은 없었다. 그것들은 늘 대중음악계의 비주류가 되어 일부 사람들에게만 소비되고, 평가된다. 그래서 한국음악은 다양한 장르가 들어왔지만 결국 발라드와 댄스의 작법아래 놓여있고, 진짜 제대로된 장르가 수입되서 정착하고 있는 것은 R&B와 힙합등 그래도 대중적인 요소가 있는 장르들정도다. 발라드와 댄스의 양념이된 록, '도리도리춤'으로 오인되었다가 이제는 그 누구도 거론하지 않는 테크노를 보라.



결국 한국의 주류는 '새로운 것이 세상을 바꾼다'던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로도 그 외양은 바뀌었어도 대중이 좋아하는 것, 그리고 그 대중을 상대로 메이저 음반사/기획사들이 만들어내는 것은 똑같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정서와 감각보다는 대중에게 기존의 것을 새롭게 보이도록 포장하는 장르의 사운드적인 특징과 기술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음악계는 여전히 미국음악의 장르적 흐름에 의존하는 관계에 놓여있다. 물론 좋은음악들은 어쨌건 꾸준히 나온다. 하지만 과연 서태지와 아이들로부터 시작되었던 '한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의 조화가 이루어진 음악은 언제 나올 수 있을것인가.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가 동시에 움직이게 되면서 이제 세계의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받아들이고, 얼마나 잘 '한국화'시키느냐보다 그들과는 또다른 음악언어를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게 왜 중요하냐고? 요즘 급감하는 음반판매량을 보라. 음악이 그저 즐겁거나 슬픈 분위기만을 전달하는 'BGM'에 그칠 때, 음악은 그 생명력을 잃어가게 된다. 특히나 mp3까지 있는 시대라면 음악은 더욱더 각 개개인의 감성을 건드릴 수 있는, 그래서 '기어코' 사게만드는 의미있는 것이 되거나, 아니면 현재 대중의 매우 공통적인 감성을 건드릴 수 있는, 트랜드에 극도로 민감한 음악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쪽이건 대중이나 뮤지션이나 우리 스스로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감성에 대해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난 10년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감정을 보다 디테일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장르를 '배워가는' 10년이었다면, 앞으로의 10년은 그것들을 '만들어가는' 10년이 되어야할지도 모른다.



  c. 대안은 아니더라도 : 대안은 아니지만 이런 문제를 비교적 잘 해결하고 있는 것은 음악보다는 드라마와 영화쪽에서 발견된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드라마는 지금 매우 위험한 상황(지난주 기획기사 참고)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는 그런 수많은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요즘들어 더욱 방송사내에서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위세를 떨치고 있다. 드라마는 트랜드를 어떻게든 따라잡는 동시에, 시청률에 상관없는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들은 KBS '겨울연가'처럼 흥행을 노리는 드라마도 만들지만 동시에 '바보같은 사랑'같은 '2%'대 시청률을 기록하는 작품을 끝까지 방영한다. 음악계에서 루시드폴은 아무리 잘나가도 10만장 내외지만 '바보같은 사랑'은 2%라 하더라도 수십만 시청자에 달한다.



이것은 감성의 분화이자 동시에 집중화이다. 소수인 듯 싶지만 모아놓고 보면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런 정서를 가지고 있고, 방송사는 그들을 요리할줄 안다. 지금현재 짜여져 있는 시간대별 장르별 분포는 그런 시청자들의 정서에 대한 민감한 반응의 결과이다. 또한 사극열풍에서 볼 수 있듯, 방송사는 '구닥다리'로 여겨졌던 사극에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생명력을 불어넣기도 한다. 물론 드라마와 음악계의 시장구조는 아주 다르지만, 그래도 몇십년동안 꾸준히 시청자층을 세분화시키며 그들에 맞는 한국식 인기 드라마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방송사의 노력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980년대만해도 인기있던 팝이 1990년대를 넘어서면서 급락하게 된 것은 방송사의 팝에 대한 규제아닌 규제와 더불어 팝의 스타일을 한국음악이 받아들여 'K-POP'을 만들어냈기 때문이지만, 공중파방송에서 198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미국 드라마들을 주말 오전이나 심야에 방송하도록 만든 것은 규제나 그들 스타일의 흡수가 아닌 한국인만의 드라마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1992년에 랩과 같이 들어온 트랜디 드라마는 한국 드라마에서 랩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다만 이전의 홈드라마와 사극, 그리고 그후에 생긴 시트콤등과 인기를 나누는 정도에 그쳤다. 통속적이건 유치하건간에 한국식 드라마는 자체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또 다른 방법의 대안이다. 1990년대 초반 한국영화는 음악-TV 다음의 장르였다. '장군의 아들'은 60만관객으로도 한국영화역사상 최다 관객을 기록하는 영화가 됐다. 하지만 지금은? 서울에서 100만 안넘으면 웬지 섭섭하다. 이는 한국인에게 영화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트랜드가 되어 생활패턴으로 자리잡았다는 점도 크지만, 동시에 그것을 재빨리 잡아내서 산업적인 변화를 일으켰다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한국영화는 1990년대 초중반까지의 부진을 끝내고 서서히 배급망을 확보하기 시작했고, 멀티플렉스를 통해 복합 위락시설의 모습을 갖추었다. 사람들은 멀티플렉스에 가서 영화를 보고, 식사를 하며, 주변의 놀이시설에서 놀면서 자연스럽게 영화를 놀이의 중심에 둔다. 음반한장 사는데는 이것저것 따지지만 따지고 보면 돈은 더 드는 영화는 '심심하면 보는' 존재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산업적인 마인드란 '상업적인' 컨텐츠를 만드는 것도 포함되지만, 생산과 소비에 있어서 보다 많은 돈이 돌 수 있도록 기반자체를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문제는 많지만 멀티플렉스는 한국영화가 개봉관을 잡는데 유리하도록 만들었고(물론 반응이 없으면 일주일만에 내리기도 하지만), 오히려 헐리웃 직배사에 여러 가지 압력을 넣는 존재로도 작용하게 되었다.



또한 장르의 흐름은 어떤가. 물론 한국은 여전히 어떤 뚜렷한 장르물이 없다. '쉬리'이후 한국형 블록버스터, 액션, 호러, 이제는 SF와 하드보일드까지 손대면서 계속 흐름에 따라 주도적인 영화가 바뀌는 탓에 여전히 고정적으로 관객을 끌어들일 장르물의 발달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영화는 '한국인'의 얘기를 다루려 노력한다. 그게 '공공의 적'처럼 부패형사의 이야기든, '두사부일체'의 조폭과 사학비리의 이야기이건, 혹은 '정글쥬스'처럼 '양아치'를 다루건간에 어쨌건 한국적인 배경에서 한국인의 정서를 다루려 노력한다. 그것은 때로는 '버스, 정류장'처럼 도대체 갈 곳을 모르는 사람들의 공허함(물론 그 시도는 실패했다고 보지만)으로 나타나거나 '집으로...'처럼 한국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정말 버릇없는 손자와 헌신적인 할머니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홍상수처럼 '생활의 발견'을 계속 물고 늘어지면서 한국인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영화는 주류와 비주류의 개념이 매우 희박하다. 한국에서 현재 잘나가는 감독들은 대부분 독립, 혹은 인디영화찍으면서 '비주류'에 있다가 히트영화를 만들어낸 인물들이다. 그래서 그만큼 다양한 색깔의 작품들이 나올 수 있다. 박찬욱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복수는 나의 것'으로의 변신을 시도하고, 류승완 감독은 자신의 삶을 영화화한 것같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자신의 대중문화적 감성을 코믹하게 표현한 '다찌마와 리', 그리고 그것을 상업영화적인 틀에 녹여낸 '피도 눈물도 없이'같은 영화들을 자연스럽게 찍어낸다. 인디가 오버그라운드가 되고, 오버그라운드가 다시 실험적인 영화를 찍는 일이 한국 영화계에서는 '아직은' 가능한 일이다.



'버스, 정류장'에서의 루시드 폴이 그렇듯, 한국영화는 한국 대중음악계보다도 더 한국의 비주류 음악들을 영화속에서 잘 이용한다. 날때부터 '캐스팅'되어 오버가 되고 오버의 방식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세계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메이저로 '픽업'되는 것이다. 주류와 비주류의 대립과 주류의 전복이 아니라, 비주류였던 사람들이 자라서 결국 주류가 된다. 이는 제작진뿐만 아니라 그외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알고보면 다 같은 학교에서 배 곪으며 영화찍고, 지원했던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보다 다양한 감성과 트랜드를 읽어낼 수 있고, 작품은 '아직은' 다양하게 나올 수 있으며, 앞으로도 그 움직임은 계속될지 모른다. 중요한건 '누가' 그 세계를 지배하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작품들을 만들면서 그 분야를 풍요롭게 만들고, 대중과 함께 공감하느냐는 것이며, '상업성'속에서도 만드는 사람의 확고한 '생각'이 있느냐는 것일지도 모른다. '공산품'만을 찍어내는 대중문화란 외면받기 마련이다.


2. Fashion



a. 무대위 :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했을 때 그들의 의상은 음악못지않게 화제였다. 물론 그당시로서는 워낙 파격적인 의상이었던 탓이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대중에게 '유행'되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들이 무대에 입고 나오는 의상은 동시에 대중들이 편하게 입고 다닐 수 있는 의상이었다. 3집의 의상정도가 대중과는 조금 거리가 있던 정도라고 해야할까.



하지만 이후 패션의 경향은 다시 '무대용' 의상으로 바뀐다. 아이돌그룹으로서 대중음악계를 휩쓴 HOT나 그 라이벌 젝스키스, 그리고 수많은 그 이후의 가수들이 입고나온 의상들은 대중들이 일반거리에서 입고다닐 수 없는 옷들이었다.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도저히 일반인이 소화할 수는 없는, 가상의 세계에 가까운 의상이었다. 이는 신세대의 등장과 성장에 관련이 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처음에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트렌드와 기호를 표현하고 싶던 신세대가 자신들이 입고 싶은 옷, 입고 있는 옷을 가수들이 입기를 원했다면 그 다음에는 강렬한 시각적 즐거움을 원한 셈이다. 이미 모든 사람들이 찢어진 청바지는 예사로 입는데 '연예인'도 찢어진 청바지를 입는다면 그건 재미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비쥬얼을 중시하는 댄스음악, 그리고 아이돌 음악의 등장과 함께 대중은 시선을 자극하는 것을 찾았던 것이다.



그럼 요즘은? 최근 한 언론에서도 거론되었듯 평상복 스타일로 돌아가고 있단다. 실제로 god로부터 무대의상의 컨셉은 자연스러움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고, 이제 HOT의 전 멤버들은 예전처럼 화려한 의상을 입는 경우가 드물다. 가수들에게서 다시 환상보다는 동질성을 찾는 시대가 됐다고 해야할까. 물론 여전히 멋진 컨셉의 화려한 의상들은 멋지지만, 거기서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시대착오적'이라는 얘기를 듣기 십상이다. 대중의 감각은 그 모양새를 조금씩 달리할뿐, 계속 돌고 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그렇듯.



  b. 무대 밖 : 비록 서구처럼은 되지 않았어도, 피어싱과 염색도 자연스러워지고 있는 요즘 한국에서 패션의 유행을 만들어내는 척도는 파격적이거나 새로운 스타일이 아니라 지역적 경제적인 계층분화에 따른 것에 가깝다. 강북과 강남이 다르고, 소득수준에 따라 명품과 짝퉁으로 갈리며, 학교내에서도 범생이의 교복패션과 좀 노는 친구들의 사복패션으로 갈린다. 패션은 개성의 표현이지만, 그것은 자기와 세상의 차이를 보여주는 개성의 차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과 다른 집단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그래서 한국의 패션은 지나칠정도로 빠르게 변하면서도 지나칠정도로 획일적이다. 이젠 루즈삭스를 신는 여성을 좀처럼 볼수도 없고, 삭발에 가까운 머리를 하는 남성을 보기도 힘들다. 대신 요즘 가수들이 입고나오는 캐쥬얼 정장이나 세미 힙합, 혹은 장나라가 입고 나오는 귀여운 의상을 소화하기도 하며, TV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명품 의상들을 그대로 코디하기도 한다. 무난한 의상이 아니라면 작년에 유행했던 스타일의 의상을 올해에도 입는 경우는 좀처럼많지 않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유행에 뒤처지거나 특이한 사람쯤 된다. 대부분 대중적으로 유행할 수 있는 스타일내에서의 의상만을 입는다. 그 집단에서 그것을 벗어나는 의상을 입기란 힘들다. 대기업의 직장인이 귀걸이를 하면 참 '용기있거나 무모한' 행동이 되어버리고, 제대한 예비역이 힙합패션을 입고 다니면 어지간해선 '젊게 보인다'라기 보다는 '주책'이라는 소리를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에서의 옷입기는 자기 표현이라기 보다는 트렌드의 재빠른 소화이고, 이는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집단에 대한 안주에 가깝다. 그리고 그 집단은 나이의 변화, 소득의 변화에 따라 빠르게 변화한다. 집단이 아닌 자기 자신을 내보일수 있는 기회는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어쩌면 변화한 것은 이제 남자들이 겨울에 목도리를 두 개를 묶어서 멜수도 있게됐다는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거리에서 우연히 본 어떤 사람이 자신과 똑같은 옷을 입은 것에 기분나빠하는 것도 문제일 수 있지만, 자신만 다른 옷을 입었다고 당황하는 것 역시 문제아닐까. 외양이 어떻게 변하건 그걸 입는 사람의 자세는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3. The Lord



  a. 1980년대 : 들국화, 김현식, 조용필등의 가수들이 판 앨범이 과연 몇장이나 될까? 공식집계는 없지만 그래도 수백만장은 될 것이다(특히 조용필의 경우를 생각하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돈을 벌었는가? 천만의 말씀. 그럼 들국화의 멤버들이 그렇게 살겠는가. 물론 조용필이 돈을 벌기는 했지만 그건 그의 인기가 그만큼 상상을 초월한 규모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뿐이고, 그가 지금의 부라도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활동의 영향력이 상당하다. 1980년대는 순수한 음악성으로 따지면 '부분적으로' 뛰어났던 시대였을지는 몰라도(왜냐하면 이런 가수들은 절대로 다수라고 할 수는 없었으니까), 산업적으로 보았을때도 매우 후진적이었다. 인세와 계약금의 개념조차도 불분명했고, 인기가수중 고참 PD의 말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일명 '노예계약'은 그때도 있었고, 그때가 더욱더 심했다.



  b. 1990년대 : 서태지에 긍정하건 부정하건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한가지 사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자신들이 자신이 만든 창작물의 수입을 직접 관리하고, 자신들을 스스로 경영하는 최초의 가수나 다름없었다. 이들로부터 '창조성'을 가진 대중음악 뮤지션들은 기획사로부터 어느정도 독립성을 가질 수 있었고, 특히 성공을 거둔 뮤지션들은 더욱더 대중음악계의 입지를 강화시켜 나갔다. 어느덧 몇몇 가수들은 좀처럼 방송사에 출연할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되어갔고, 동시에 보다 체계적인 스케줄 관리가 이루어졌으며, 여전히 많은 문제가 있지만 불공정한 계약문제나 뮤지션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다.



하지만 커지는 대중음악시장에 살아남은 것은 뮤지션들보다는 대중의 기호를 재빠르게 파악하고 철저하게 이익을 중심에둔 기획사들이었고, 기획사는 복잡한 계약과 대우를 해줘야할 뮤지션들보다는 보다 상대가 쉬운 어린 가수들에게 초점을 맞추었으며, 동시에 제작비의 절감과 트렌드를 따라가기위해 표절이라는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장인의 제품이 팔리던 시대에서 다시 공산품들이 팔리는 시대가 됐다고 해야할까. 물론 공장의 생산체제가 그러하듯 대중의 기호를 따라가면서 생산량과 생산방법(그것이 표절일지라 하더라도)을 정하는 기획사들의 전략은 어떤면에서는 매우 시대상황과 맞는 '합리적'인 방법이기도 했지만, 그때부터 시작된 여러 부작용들은 다시 카운터가 되어 기획사가 지금도 지고가야할 짐이 되고 있다. 표절과 립싱크 문제가 없었다면 아이돌 그룹들이 대중음악계의 '거대한 섬'이 되어 지금까지도 언론과 평단의 편견혹은 무책임할정도의 찬사만이 멤도는 존재가 되었을까. 또 장기적 플랜없이 무분별하게 '어린'자원들을 뽑아낸 1990년대 중반의 기획사들의 선택은 수도없는 실패작들을 만들어내며 그 어린 지망생들을 좌절하게 만들었다. 그 수많은 아이돌 그룹중 지금까지 그래도 성공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경우는 극소수이다. 왜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이전에 데뷔한번 했다는 이유로 '중고신인' 취급받으며 얼굴을 숨겨야하는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문제들도 어느정도의 해결책과 나름의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극소수이긴 하지만 '인형'인줄 알았던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은 독립성을 가져나가고 있다. 물론 성공한 경우이긴 하지만 자신이 회사를 차리는 경우도 있고, 비교적 운신의 폭이 넓은 기획사에서 이전보다 나은 대우를 받으며 새출발을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거대기획사내에서도 SM의 SES와 신화처럼 아이돌의 외양속에서도 자신들의 나이에 맞게 변신해가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에 따른 계약관행도 바뀌어나가고 말이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뮤지션들의 희소성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제 음악은 기획사뿐만 아니라 프로듀서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도 다시 생겨나고 있다. god와 박지윤의 박진영이나 샾과 t의 박근태, 그리고 유희열이나 김현철, 혹은 힙합계의 Lo-fi등은 기획사가 문제가 아니라 그 스스로 기획사를 만들수도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다. '공장'에서 나오는 작품이 많을수록, 그 공장제품과 차별화를 갖게 만들어줄 수 있는(물론 대중적인 감각이 거기에 플러스되야 하는 것이겠지만) 사람들의 가치는 더욱더 올라간다. 1990년대는 수많은 문제가 있었다하더라도 짧은 시간안에 온갖 진통과 문제와 부조리를 지나 음악하는 사람들이 한국에서 자기 권리를 찾기 시작한 첫 번째 시대일지도 모른다.



  c. 2000년대 : 아직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러나 한가지 흐름은 대형 기획사들이 기존의 가수발굴을 통한 수익보다는 그이외의 것에서 돈을 벌고 있다는 점이다. 유통, 케이블 TV, 인터넷 쇼핑몰과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그대신 인기가수와 계약을 맺거나, 다른 PD메이커들을 통해 만들어진 가수의 앨범을 유통시키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뮤지션은 좋은 음악을 만들고 기획사는 장사만 하면 된다? 이상적인 관계일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기획사가 더욱 편하게 장사를 하면서 뮤지션, 그리고 스타를 직접적으로 발굴하고 다듬는 사람들에게 더 큰 부담을 안겨주는 것일수도 있다. 적어도 음반산업으로 돈을 번다면 계속해서 좋은 가수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면서 트렌드의 중심을 이끄는 역할을 해야하지 않을까. 물론 기획사들도 그런 영향력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이바닥에서 살아남는건 좋은 '음악'을 가진 쪽이라는건 누구나 알고 있으니까.


4. Things Change



사실 어떻게 보면 지난 10년의 변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매우 무의미한 일일수도 있다. 한국은 지난 몇십년간 정치적인 문제로인해 대중음악, 더 나아가서는 대중문화계자체가 매우 심각한 핸디캡을 안고 살아갔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때마다 정권이 강조하는 가치관에 따라 대중문화도 거기에 시달리면서 과거와의 단절을 계속했다. 그래서 지난 10년은 그 단절된 것들을 조금이나마 되살리려 했던 10년이자, 그동안 겪지 못했던 모든 사회적인 변화들을 한꺼번에 받아들였던 10년이기도 하다. 우리가 먼나라의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지난 10년을 통해 일반화되기 시작했고, 동시에 우리의 시계는 세계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오히려 지난 10년이 아니라 앞으로의 10년, 20년이다. 지난 10년이 단절되었던 과거에 대한 급진적인 변화와 경험의 시기였다면, 앞으로의 시대는 그것을 기반으로 무엇을 찾아나가서 새로운 가치관과 새로운 질서를 찾아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될 때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지난 10년처럼 '서구의 예'와 같은 어떤 모델도 제시되어있지 않고, 지난 10년처럼 급진적일수도 없다. 모든 것은 더디지만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거기서 우리는 조금씩 과거와 현재의 연결을, 1992년과 2002년, 그리고 2012년의 연결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말이다. 만약 긍정적이라면 우리의 대중문화와 우리의 삶은 보다 다양화될 것이고 서로가 서로의 권리를 인정하며, 상호공존하는 시대가 될 것이고, 부정적이라면 우리는 여전히 문화의 주체성과 삶의 주체성, 더 나아가 한 인간 개개인의 주체성을 찾아 헤메며 살 것이다. 우리가 정말로 변화하는 것은 지금부터다.



글 : 강명석(LENNON@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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