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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의 역사는 핌프록의 역사
wp  2009-08-23 15:32:31, 조회 : 727, 추천 : 115

서태지의 역사는 핌프록의 역사
출처: wp 다시 돌아온 태지



4년 7개월의 시간 동안 서태지는 새로운 음악을 구상하고 있었다. 아니, 지난 시절의
흔적을 돌이키고 있었고, 그렇게 '난 알아요'에서 '울트라맨이야'로 이어지는 핌프 록의
역사를 고쳐 쓰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가 하면 다르다. 왜? 서태지니까!

서태지 귀국 전날, 잠 못 이루고 뒤척인 사람이 얼마나 많았나. '외롭고 힘들 때마다
서태지의 옛 집에 찾아가 그 담벼락에 기대어 앉아 몇 시간이고 하늘만 바라보다가
돌아오고는 했다'는 열 대여섯 살의 소녀는 이제 어엿한 20대의 숙녀가 되었다. 어디
이 숙녀뿐이겠나. 4년 7개월이면, 서태지와 아이들의 찌르기 춤을 따라하던 청년이 애
아버지가 되고도 남을 시간이다.
새로운 음악, 보다 나은 음악에 대한 부담 때문에 은퇴를 결심하게 된 그가 이제는
자신감을 회복한 것일까? 4년 7개월 동안 그가 보고 듣고 배운 음악은 어떠한 것일
까. 그가 앞으로 보여주고 들려줄 음악은 과연 어떠한 것일까. 모든 것이 궁금할 뿐이
다.
더 이상 두고볼 수가 없었는지 모른다. 자기가 뿌린 씨앗은 자기가 거두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그 동안 준비해온 새로운 음악이 이제야 완성되었는지
도 모르고, 보고들은 것들이 더 이상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 넘쳐, 그 동안 습득
해온 것들을 정리하고 이정표도 세울 겸 잠시 한국에 머무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가족과 친지가 그리워서, 그의 팬들이 너무나 그리워서, 그렇게 '고국'이 그리
워서 앨범 한 장 들고 뒷머리 긁적이며 '복귀'를 선언한 것인지도 모른다.
거자필반이라고 했고 또 회자정리라고도 했다. 고약한 방정이지만, 다시 떠날지도 모
른다는 걱정이 앞서는 것은 아마도 그가 그만큼 멀고도 신비롭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
이다. 어눌한 것 같으면서도 도무지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록 아티스트 서태지. 과연
그는 도대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난 알아요'를 들으며 서태지의 옛날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격세지감'이라는 말은 이
런 때 쓰는 말인 것 같다.
서태지가 들고 온 새 앨범 <울트라맨이야>와 그 동안의 서태지 음악 활동은 어떠한
관계가 있을까. 은퇴 전까지, 심지어 은퇴 후에도 그가 한국 젊은이들에게 행사해온
음악 안팎의 막강한 영향력들은 과연 세기가 바뀐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할 것인가.


서태지의 역사는 핌프 록의 역사

서태지는 새 앨범 <울트라맨이야>를 핌프 록이라고 했다. 서태지 마니아의 90퍼센트
는 어리둥절해했고, 음악 좀 듣는다는 록 마니아는 '미국 가서 핌프 록 배워왔다'고
했다. 하지만 이 핌프 록은 처음 보여주는 것도, 새로 배워온 것도 아니다. 서태지는
처음부터 핌프 록 아티스트였다.

핌프 록이라는 장르 용어
서태지의 새 음반 <울트라맨이야>를 이야기할 때 항상 빠지지 않는 장르 용어들이
있다. 하드코어, 랩 메탈, 핌프 록, 더 나아가 트래쉬, 그리고 레드 넥 트래쉬까지. 이
다섯 개의 용어는 한국에서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하드코어'
로 통일된 듯하다. '힙합과 록이 섞인 음악' 정도로 통용되고 있는 이 하드코어는 원
래 트래쉬, 데쓰, 둠, 블랙, 그라인드코어 등의 극단적이고 파격적이며 거칠고 과격하
기 이를 데 없는 헤비메탈을 모두 포함하는 광범위한 개념의 용어였다. '잘 못 쓰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록의 장르를 구분하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작업인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유입 문화'인 록. 당연히 우리에게는
뿌리와 줄기가 없다. 오직 가지에 매달린 열매만을 가지고 듣고 연주하고 이야기할
뿐이며 그것으로 충분하다. 게다가 록의 장르라는 것 자체가 손쉬운 접근을 위해 임
의적으로 설정한 것인 만큼 그 용어에 집착할 이유는 천 번도 없다.
'그 논리면 이미자도 래퍼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을 지 모르겠다. 물론 이미자는 래퍼
가 아니다. 그러니까 아무렇게나 불러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R.A.T.M은 랩 메탈
이고 Korn은 핌프 록이며 따라서 서태지는…' 따위의 구분이 우습다는 것이지 랩 메
탈이나 핌프 록이 다른 록과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아니니까. 일
반적으로 핌프 록은 트래쉬메탈의 기타 리프에 힙합적인 랩이 가미된 음악이라고 보
면 거의 정확하다. 그렇다면 트래쉬메탈은 무엇이고 기타 리프는 또 무엇인가. 트래쉬
메탈은, 음, 미안하지만 들어보는 수밖에 없다. 80년대 후반의 트래쉬메탈 4인방이었
던 Metallica, Megadeth, Slayer, Anthrax 앨범 중 하나를 택하면 된다. 강하고 빠른
중저음의 기타 리듬을 바탕으로 한 헤비메탈의 한 장르. 기타 리프는, 곡을 이끌어 가
는 '기타 리듬'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이 핌프 록의 대표적인 외국 그룹으로는 위에
서 언급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과 콘 외에도 림프 비즈킷, 매드 캡슐 마켓츠
등이 있다.

서태지의 '핌프 록'은 '서태지'의 핌프 록
이러한 외국의 핌프 록 그룹들은 트래쉬메탈과 힙합의 토양 위에서 태어났고 성장했
다. 그렇다면 서태지의 핌프 록은? 서태지 역시 한국 트래쉬메탈, 한국 힙합의 토양
위에서 태어났고 성장했다. 다 아는 것처럼 서태지는 헤비메탈 그룹 시나위의 베이시
스트 출신이다. 그의 이러한 헤비메탈 아티스트적인 기질은 이른바 '댄스' 팀으로 규
정되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 활동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제일 먼저 언급할 수 있는 것이 1집의 '난 알아요'다. '그 미소는 너무 아름다웠어' 다
음에 이어지는 기타 리프는 전형적인 헤비메탈의 그것이며 억지를 조금 부리자면 트
래쉬메탈이라고 할 수도 있다. 2집의 '하여가'를 보면 이러한 특징은 더욱 선명해진다.
기타 리프로만 보자면 분명한 트래쉬메탈이다. 이 곡의 기타를 맡은 이태섭은 한국
최초의 트래쉬메탈 그룹이었던 아발란쉬의 리더였다. 이러한 사운드에 서태지의 힙합
적인 랩과 보컬. 이미 이 때부터 핌프 록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이
곡은 미국의 '트래쉬메탈 그룹' Testament의 Legacy 앨범 B면 첫 번째 곡(레코드 시
대 기준)의 기타 에들립(쉽게 말하자면 기타 솔로 연주)을 표절했는데, 이것 역시 이
태섭의 트래쉬메탈적인 기질과 무관하지 않다. 이후 서태지는 이태섭과 함께 환경보
전 콘서트 '내일은 늦으리'에서 '나를 용서해주오'라는 트래쉬메탈적인 곡을, 그리고 자
신의 첫 콘서트에서 'Rock & Roll Dance'를 연주한다.
서태지의 핌프 록적인 성향은 3집 앨범에 와서 더욱 선명해진다. 이 앨범의 인트로
연주곡은 트래쉬메탈 기타 리프의 교과서다. '교실 이데아' 역시 마찬가지다. <울트라
맨이야>는 어쩌면 이 곡의 연장선에 놓여있는 앨범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9월 9일 공
연 때 그가 연주한 유일한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곡은 이 '교실 이데아'뿐이었다.
거칠고 급박한 기타 리프, 그리고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의
코러스 부분은 순도 100%의 트래쉬메탈이다. 이 코러스의 주인공은, 한국 최고의 트
래쉬메탈 그룹 크래쉬의 보컬이자 베이시스트인 안흥찬이다.
한국에 핌프 록의 열풍이 불어닥치기 전부터, 아니,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이나
콘이 결성되어 이름을 알리기 전부터 서태지는 이미 핌프 록을 해왔다. 적어도 '미국
생활을 하면서 핌프 록을 접하게 되었고 그것을 이제야 한국에 전파'한 것은 결코 아
니다. 서태지는 외국의 핌프 록 그룹들과 '함께' 성장했다. 그가 영향을 받았다면 90년
을 전후해서 랩과 트래쉬메탈을 접목한 음악을 처음 선보였던 Anthrax나 Suicidal
Tendencies일 것이며, 이들 그룹은 서태지와 외국의 핌프 록 그룹들에게 '똑같은' 영
향력을 행사했다.

서태지 핌프 록의 끝나지 않은 역사
물론 서태지의 미국 생활은 일종의 '음악 유학'으로 해석할 수 있다. 4년 7개월의 미
국 생활 동안 서태지는 제대로 된,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참으로 미국적인' 핌프 록을
배워왔다. '제대로 된 것이 미국적인 것이냐'고 따지는 애국자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대답할 수밖에. 오리지널리티가 생략된 응용은 어불성설이
다. 또한 음악을 듣고 연주하는 데 국적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무엇보다,
이른바 '한국적인 핌프 록'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가 '쌈마이'다. 연예계 진출의
그 날을 고대하는, 그렇게 랩 댄스와 핌프 록을 이음동의어로 해석하는 초지일관 단
순무식의 소품종 대량생산 클럽 밴드들에게 무엇을 바라겠는가. H.O.T의 '아이야'도
하드코어라고 끝까지 우겨대는 '야광봉 소녀'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샹송은 샹
송답게, 핌프 록은 핌프 록답게. 이것이 로커의 슬로건이다.
사실 서태지의 <울트라맨이야> 앨범은, 그리고 이 번 공연에서 볼 수 있었던 무대매
너는 콘이나 매드 캡슐 마켓츠의 그것과 너무 흡사하다. 당연하다, 흡사할수록 좋은
것이니까. 세계 최고의 밴드, 일본 최고의 밴드와 흡사하다는 것이 수치스러울 이유는
만 번도 없다. 더군다나 이러한 '흡사함' 속의 리듬이나 보컬, 그리고 무대매너는 댄서
가 댄스를 하고 래퍼가 랩을 하는 것처럼 핌프 록이 핌프 록일 수 있는 하나의 '약속'
이기도 하다.
'난 알아요'의 출사표, '하여가'와 '교실 이데아'의 임전무퇴, 'TAIJI 980707'의 이 보 후
퇴, 그리고 <울트라맨이야>의 일보전진. 이것이 서태지 핌프 록의 끝나지 않은 역사
다.


서태지가 결심하면 마니아는 행동한다

연희동 서태지의 옛 집 담벼락에 남아있는 흔적 하나: 나를 낳아준 분은 부모님이었
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서태지와 아이들이었다. 그랬다. 그래서 마니아는 서태지를 잊
지 못했고, 그래서 서태지는 마니아에게 다시 돌아왔다.

7억을 들여 만들었다는 '아시나요' 뮤직 비디오. 월남전 참전용사들의 거센 반발에 조
성모는 고개를 숙여 사죄했다. 그것도 모자라, 용병 허준호를 죽인 베트콩을 찾아내
마침내 응징하고야 만다는, 권선징악적인 동시에 복선화음적이기 이를 데 없는 내용
의 뮤직 비디오를 다시 찍었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시대다. 이보다 두 배는 더 유감스
러웠던 시대에, 서태지는 '시대유감'을 표명하며 '세상을 뒤집어엎자'고 했다. 공윤은
'뒤집어엎지 말라'고 했고, 서태지는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며 공윤의 면전에
침을 뱉었다. 그 얼마 후 서태지의 '시대유감'은 온전한 모습으로 커밍 아웃을 했다.

서태지가 유행시킨 것들
조금 우습겠지만, 우선 '반바지'를 꼽을 수 있다. 서태지가 등장하기 전, 그러니까 90년
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는 반바지를 입고 시내를 활보하면 패륜아 취급을 받았
다. 이 '반바지 문화'는 당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전기의 발명'과도 같은 광명이었다.
'헤어 칼라'도 있다. 총천연색 헤어 칼라면 모를까, 어지간한 염색으로는 청학동에서
온 할아버지에게조차 어필하지 못하는 시대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노랗게 염색
한 머리도 손가락질을 받았던 시대 이야기는 '전설의 고향'이다. 바로 그 시대에, 서태
지와 아이들은 빨간색, 녹색, 보라색 헤어 컬러를 하고 있었다. 이 외에 힙합 패션이
나 상표 달고 다니기 등의 유행도 있었다. 물론 서태지 이전에는 '없었던' 문화다.
서태지가 유행시킨 것 중 주목할만한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음악'과 '춤'이다. 2000년 9
월에 듣는 서태지 1집은 다소 촌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일종의 혁명
이었다. 믿지 못하겠지만, 너무 빨라서 따라 부르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특히 '환상 속
의 그대'는 한국 최초의 100퍼센트 랩이었다. 음악평론가 중 열에 아홉은 '결코 대중
에게 어필할 수 없다'고 장담했지만 서태지는 보란 듯이 리믹스 버전까지 만들면서
이 곡을 '난 알아요'를 능가하는 곡으로 격상시켰다. 지금 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하여가'나 '교실 이데아', 그리고 'Come Back Home'은 말할 것도 없다. 상투적인 표
현이지만, 서태지는 힙합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따라서, 서태지의 은퇴 선언 이후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복제 양 돌리 댄스 팀들이 보여주고 있
는 천박한 음악은 결코 서태지의 책임이 아니다. 춤 역시 마찬가지다. 1집 활동 당시,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듀스나 현진영보다 탁월하게 나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방차
의 국민체조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것은 단연 서태지와 아이들의 공로였다.

문화 혁명가 서태지의 생명력 있는 메시지
좋은 음악을 들려준 아티스트는 많았다. 하지만 듣는 이의 정신을 움직인 아티스트는
많지 않았다. 존 레넌, 밥 딜런, 짐 모리슨…. 영국의 역대 수상, 미국의 역대 대통령
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이들 아티스트. 그리고 이제 한국에는, 감히 말하지만,
서태지가 있다. '저항'이라는 정치적인 단어를 무척이나 부담스러워하는 그. 하지만 그
부담과는 별도로 그는 엄연한 문화 혁명가다.
우선 가사가 전하는 메시지. 대표적인 곡으로 제도권 교육에 대한 불신과 적개심을
공격적으로 드러낸 '교실 이데아'를 꼽을 수 있다. 그 '노골적인 풍자'로, 전국 9백만의
아이들에게는 응어리진 그 무엇을 터뜨릴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그 9백만의 아이들
의 머릿속에 똑같은 것들만 집어넣고 있었던 교육 관계자들에게는 더 이상 방치해서
는 안 되겠다는 섬뜩한 공포를 경험하게 했다. 같은 앨범의 '내 맘이야'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다. 초현실주의적이기까지 한 기괴함이지만 듣는 이는 통쾌하
다. 이 거칠 것 없는 제도권에 대한 적개심과 자유분방한 기괴함은 이 번에 발표한
새 앨범 <울트라맨이야>에 그대로 이어진다. 세상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음악에 대
해 무책임하게 지껄이는 이들 앞에서 우물에 독을 뿌린다. 방어적이면서도 공격적이
다. 무엇보다 솔직하고 자신감에 차있다. 자신과 자신의 팬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이 솔직한 자신감은 심지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음악은 시가 아니다. 따라서 음악의 메시지는 가사만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수학적 확실성에 기초한 음성학적·음운학적 근거가 있어야겠지만, 서태지의 메시지
는 '음악'을 생략하고는 설명할 수 없다. 모차르트를 들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바흐를
들으면 자기 자신 속으로 몰입하게 되며, 레조 세레스의 '글루미 선데이'를 들으면 자
살을 하고 싶어진다.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음악 속에는 정신을 움직이게 하는 무엇인
가가 분명히 있고, 서태지는 동물적으로 그것을 잡아내고 있다. 'Come Back Home'을
듣고 집으로 돌아온 청소년들. 반은 가사 때문이었고 나머지 반은 서태지의 영향력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메시지는 '음악'을 통해 전달되었다. '교실 이데아'의 '피가 모자
라'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음운학적으로 볼 때 충분히 '의도된' 조합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왜 바꾸지 않고 마음을 졸이며…'라는 가사와 가락, 그리
고 '안흥찬'이라는 보컬의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서태지의 동물(천재)적 감각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사회학자의 상당수는 서태지를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보며 심지어 사회 변혁의 가능
성으로 해석하기까지 한다. 사실 이른바 80년대 운동권이 해내지 못했던 저항의 사회
적 합의, 그 대중성을 이끌어낸 것은 바로 서태지였다. 그것도 '자생적'으로. 물론 그는
정치학자도 경제학자도 아니다. '뮤지션'일 뿐이며, '펜'이 아닌 '음악'으로 자신의 삶과
세계를 전달할 뿐이다. 음악은 음악일 뿐이며, 서태지는 음악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냈다.

서태지의 자신감은 마니아의 자부심
서태지를 따라 다니는 수식 중의 하나는 '탁월한 장사꾼'이다. 이러한 비아냥거림은
단번에 반증된다. 서태지는 '팔리지 않는 음악을 고집'하고 있으며 이것은 엄연한 사
실이기 때문이다. 수완이 좋을 수는 있지만 돈 때문에 음악을 가지고 장난을 치지는
않는다. 그의 이러한 고집은 그의 음악 세계로, 서태지 마니아의 자부심으로 이어진
다. 서태지의 핌프 록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대중'에게는
새로운 것이며, '제대로 된 핌프 록'이라는 점에서는 클럽의 '핌프 록 마니아'에게도 새
로운 것이다.
하나 더. 서태지는 분명 '대단한' 아티스트지만 '유일한' 아티스트는 아니다. 서태지를
전후해서 한국의 가요계는 댄스 일변도의 길을 걷고 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마
찬가지로 서태지의 복귀와 함께 한국의 가요계가 핌프 록 일변도의 길을 걷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서태지도, 그의 마니아도, 한국의 가요계를 걱정하는 그 누구
도 바라지 않는 것이다. 서태지에게는 자신의 음악 세계를 알아주는 마니아만 있으면
되고, 서태지의 마니아에게는 자신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서태지만 있으면 된다.
서태지는 공평무사하고 불편부당해야 할 정치인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가
수일 뿐이다. 서태지 팬클럽의 회장일지라도 그의 새 음악이 싫으면 팬클럽에서 탈퇴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음악보다는 '서태지'가 좋아서 남아있는 팬들도 있겠지만, 그
런들 어떤가. 새로운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귀 하나가 더 생기는 셈인데.


마니아가 만들어낸 한국 최고의 록 콘서트

노란 손수건의 물결은 공연장 밖으로 넘쳐흐를 것만 같았다. 그 물결 속에서 뒤섞인
굉음과 함성의 하모니. 오직 서태지와 그의 마니아들만이 연출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감각이었다.

지난 9월 12일 이미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이 됐고, 또 현재 인터넷을 통해 방영이 되
고 있는 '방송용 콘서트' 대신, 텔레비전에서 볼 수 없었던 공연 현장의 스케치를 중
심으로 공연 후기를 적어본다.

공연장 가는 길
오후 다섯 시가 조금 못 된 시각 사무실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아니, 여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각 올림픽공원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너무 일찍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야무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야무진 생각'이었다는 것은 공원 입구에 들어서
면서부터 깨닫게 되었다. 1, 2분 간격으로 들려오는 함성. 그리고 펜싱경기장에 가까
워질수록 더욱 크게 들리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옛 노래들. 공연장에 도착해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이 함성과 옛 노래는 티켓을 구하지 못한 서태지 팬들을 위해 펜싱
경기장 밖에 따로 마련한 야외 멀티큐브 공연장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그 야외
공연장에는 어림잡아 만 명은 족히 될 팬들이 멀티큐브를 통해 나오는 서태지와 아이
들의 옛 공연 모습을 보면서 팔을 높이 치켜들고 흔들면서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 다음 눈에 들어온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행렬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골똘히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 흘러나오는 음악에 몸을 맞추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 대형 태극기를 몸에 두른 대여섯 명의 여중생들,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띈 사람들
은 형형색색의 유니폼을 맞추어 입고 질서정연하게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여러 팬클
럽들이었다. 행렬을 통해 볼 수 있었던 서태지 팬의 연령층은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 사이었으며, 초등학생이나 3, 40대의 어른도 가끔씩 찾아볼 수 있었다.

공연 시작 직전
입장이 다 끝나고 나서 공연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는 시간. 팬들은 모두 모 스포츠
용품 업체에서 나누어준 노란색 손수건을 한 장씩 들고 있었다. 서태지 입국 당시 공
항에서 흔들었다는 그 노란색 손수건. 공연장에서는 계속해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옛
노래들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팬들은 마치 직접 공연을 관람하는 기분으로 그 음악에
맞추어 손을 흔들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가끔씩 소리도 내질렀다. 대부분이 스탠딩
콘서트는 처음이었을 것이지만 장내는 무질서하지 않았으며 서서 즐기는 것에도 크게
불편해하거나 어색해하지 않았다. 그 때였다, 갑자기 커지는 함성. 스크린(무대를 가린
막) 위로 익숙한 자막이 떴다.
'기억나니?'
마니아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터질 듯한 함성.
'End가 아닌 And…'
함성은 더욱 커졌으며, 몇은 다리에 힘이 빠진 것인지 자리에 주저앉기도 했다.
'이제 우리 함께 하는 거야.'
여태까지 '장내가 떠나갈 것 같았다'는 표현을 서른 번 정도는 써본 것 같은데, 이 때
처럼 그 표현이 실감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제주도의 유채꽃밭이 이보다 더 아름다
울 것인가. 사방이 노란색 천지였다. 몇은 그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울었고 또 몇은
두 팔을 높이 뻗으며 포효를 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애국 청년 몇은 태극기를 흔들
기에 여념이 없었다.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다보니 가끔씩 질서가 흐트러질 때가 있었는데, 그
때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태지 팬 질서를 지키자' 구호가 흘러나왔고, 거짓말처럼
장내가 정리되었다. 또한 공연 진행을 맡는 사람이 나와서 '텔레비전 촬영 때문에 그
러니 잠깐 형광봉은 꺼주시고 야광봉은 허리 아래로 내려주세요'라고 하자 수 천 개
의 형광봉과 야광봉이 정전이라도 된 것처럼 2, 30초 만에 사라져버렸다. 물론 이 때
도 '우리는 태지 팬 질서를 지키자' 구호가 있었고, 수 천 명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것이 스스로도 대견했는지 팬들은 박수를 치며 서로를 칭찬하기도 했다.
데뷔했을 때부터 은퇴했을 때까지의 모습들이 계속해서 스크린을 통해 상영되었고,
팬들은 그 세세한 것 하나 하나에 즉각적이면서도 민감하게 반응을 하며 함성과 야유
를 멈추지 않았다. 특히 공연 중간에 나온 자료화면 속의 인터뷰, '내 음악, 내 외모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사과하고 싶지는 않다'는 말이 나왔을 때는 팬 거의 대부분
이 까무러칠 정도로 열광을 했으며 그 열광 속에는 남다른 자신감과 자부심이 들어있
었다.

짧은 공연, 긴 여운
마침내 공연이 시작되었고, 팬들은 정신을 잃고 서태지의 공연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서태지의 몸짓 하나 하나는 그대로 무대 아래의 팬들에게 전달이 되는 것 같았다. 서
태지 공연의 정점은 '교실 이데아'였다. 팬들은 거의 단체 줄넘기를 하는 것처럼 껑충
거렸고, 심지어 이 때는 기자석까지도 들썩거릴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울트라맨이야>가 한 번 더 연주됐고, 그 다음 스케이트보드 쇼가 이어
졌다. 팬들은 이어질 서태지의 다음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것은 서태지가 공연
장을 빠져나갈 시간을 벌기 위한 쇼였다. 이것은 마치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 공연
마지막에, 마이클 잭슨이 공연장을 빠져나갈 동안 10대 소녀 팬들을 붙잡아둘 목적으
로 H.O.T를 투입했던 것과 비슷한 경우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잠시 몸을 숨겼
던 서태지는 다시 그 공연장에서 자정이 넘도록 녹화 작업을 계속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날 서태지의 공연이 '방송용'이었고 따라서 그 자리에 참석한 서태
지의 팬들은 '들러리'였다며 제법 날카로운 펜대를 세웠다. 물론 공연 중간 중간에 많
은 자료 화면이 나간 것은 사실이며 '방송'을 염두에 둔 치밀한 '쇼'였던 것도 사실이
다. 그러나 기자 몇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이러한 것을 문제삼았던 것 같지는 않다.
서태지 팬클럽 사이트에 가보아도 '조금 아쉬웠다' 정도의 반응은 있을지언정 몇몇 기
자가 말하는 '들러리 취급을 받았다' 같은 언급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자
료화면일 지라도, 한 곳에 모여 같이 공감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팬이 서태지 마니아다. 4년 7개월 만에 귀국해서 열흘 만에 공연을 가지는 아티
스트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을 줄 아는 명민한 팬이 바로 서태지 마니아다. 아름
다운 울트라 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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