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추천글



소리의 신체적 효과 (태지음악의 본질?)
신현준  2009-08-23 15:31:34, 조회 : 555, 추천 : 68

소리의 신체적 효과 (태지음악의 본질?)
글쓴이: 신현준 (나우누리 AIT.Virus 회원)
출처: TV저널 (97년 1월 30



서태지와 아이들은 지난 95년 가을 한 방송국에서 방영한 4집 발표를 기념하는 무대에서 3인조 록밴드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이주노는 베이스 기타 멜빵을 메고, 양현석은 드럼스틱을 손에 쥐었다. 서태지는 물론 기타와 베이스 보컬을 맡았다. 4집의 모든 곡을 록 음악의 범주에 넣을 수는 없지만, 이 장면운 충분히 상징적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은퇴를 발표했을 때 가장 당황한 사람들은 아마도 "태지들이 댄스음악을 거부하고 록음악으로 돌아왔다"고 주장헀던 음악평론가들이었을 것이다. 적지않은 사람들은 태지들이 일단 '뜰 수  있는' 음악으로 시작하여, 대중적 기반을 쌓은 뒤 '진실된' 음악을 추구하는 전략을 택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3집 이후 그들의 가사에 사회적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한 변화의 징후로 읽혔다.  진지한 팬과 평론가들은 그들이 여타의 댄스그룹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려고 애썼고, 1집과 2집에서  발전의 '맹아들'을 발견하기 위해 분주했다. 예를 들어 <환상속에 그대>를 사회에 대해 발언하기 위한  자기내면의 성찰로 해석했다. 그렇지만 난데없는 은퇴선언은 그들을 혼돈에 빠뜨렸다.
무언가 잘못 짚은   것이 분명했다.  널리 지적된 상황이었만, 태지들의 음악이 충격적으로 들렸던 이유는 그들이 처음부터 90년대 팝 음악의  '인디'(Indie)적인 흐름들을 흡수하여 가다듬었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그런지 록, 갱스터 랩,  테크노(테크노 레이브나 테크노 하우스)라는 상이한 스타일들이 그들의 손끝에서 잘 요리되었다. 아마도   테크노 음악의 전자음향, 디스토션 기타 사운드, 그리고 한국어로 지껄이는 랩이 어우러진 초기의 수록곡들은  앞으로도 뛰어난 업적으로 남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태지들의 음악이 시간이 지날수록 '랩 댄스 음악에서 록으로 나아가면서, 상업성을 벗어나  더 많은 예술적 짐정성을 확보해 갔다'라는 식의 해석은 이제 버려야 할 듯하다. 태지들의 록은  '품위유지용'이라는 비판도 과녁을 벗어난 것이다. 1,2집의 '유치한'가사와 3,4집의 성숙한 가사를   대비시키는 일도 지나치게 강조할 일은 아니다.

태지들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들이 만들어낸 '소리'의 신체적 효과였다. 그 소리는 음악의 '의미'를  의식적으로 따지기 앞서서 무의식에 깊이 새겨졌다. 이는 록 음악의 유서 깊은 관습이지만, 그들의  음악에는 상이한 차원이 있었다. 즉 그 소리에는 록 음악에 대한 본능적 애정과 그것을 파괴하려는 충동  사이의 긴장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오래된 스타일들을 낯설게 만드는 새로운 효과를 창조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긴장이 항상 충격적이고 생산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최악의 경우는 양자가  결합되지 못한 채 나열되는 것이다. 최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4집은 위험한 순간을 보여주었다.   개별적으로는 수작에 속하는 여러스타일의 곡의 병렬. 그리고 가요팬들의 환호의 이면에는 첨예한 위기가   전개되고 있었다. 그들은 순수한 록으로 돌아가기에는 반환점을 넘어버렸다. 또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이룬 혁신을 대중적으로 해석하는 일은 그들의 체질이 아니었다.
        
  여러가지 이유를 지적할 수 있다. 음악감독과 '댄서'라는 그룹의 형태가 더 이상의 창조를 방해했다고  지적할 수도 있고, 복마전 같은 연예계의 각종 압력이 음악활동에 회의를 안겨주었다고 지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모든것은 사후적 평가일 뿐이다.  

엉뚱한 이유를 지적하자.
그들은 외국의 스타일을 수용하여 변형하는 부단한 작업에서 피곤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는 정치든 경제든 문화든, 도전과 혁신이 일차적으로 '수입'이라는 경로를 취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떠안고 있는 피곤이다 (외래문화를 경멸하고 '우리 것'만을   추구하는 예외의 사람을 제외한다면)   그렇지만 음악이 대량으로 매개되는 매스미디어 사회에서 음악이 하나의 '올바른'의미를 가진다고 말하는   것은 독단적이거나 어리석은 일이다. 태지들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본인들은 "됐어 됐어  이제그런 얘기들은 됐어"라고 말할 것 같다. 우리의 문화는 그런 논쟁을 피곤하지 않게 만드는 능력을  갖추지 못







  목록보기   추천

이전글미국웹진 TAKE TWO 리뷰 운영자
다음글'98.8 서태지 혁명 강헌

Copyright 2000-2017 Taijiman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