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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8 서태지 혁명
강헌  2009-08-23 15:31:20, 조회 : 622, 추천 : 130

'98.8 서태지 혁명
글쓴이: 강헌
출처: 월간 <KINO> (98/8)


컴백홈
서태지는 아이돌 스타로서의 자신의 분장을 지우는 위험천만한 도박에
그의 솔로 데뷔 앨범을 던졌고, 주류  언론으로 하여금 네거티브 캠페
인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그의 신드롬을 부활시키는데 성공했다. 어쨌
거나 9시 뉴스가 새 앨범 발표를  할애할 수 있는 한국의 뮤지션은 그
말고는 없다. 이성욱의 지적처럼 그는 90년대  한국사회에서  한 사람
의 스타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기호이며 그의 텍스트는 그가 새롭게
제시한 앨범 바깥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그의 연착륙은,  어
느 정도는 예상되었던  것이지만, 다양하고도 격렬한 심문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루어졌다.

서태지 죽이기
그 첫 번째 포문은 '은퇴번복'이라는 도덕적 힐난을(과연 이것이 성립
할 수조차 있을지  의심스러워 보이지만)슬며시  바탕에 깔고 진행된,
얼굴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그의 홍보 노선에 대한 거대 매체의 불쾌
감. 서태지에 대한 적대자들은 지난 은퇴식에 이어 이번에도  '교묘한
상술'이라는 감정적인 전가의 보도를  꺼낸다.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고 여겨지지만, 이들은 음반이 마케팅전략을 지닌 '상품'이라는 가장
본연적인 정의조차  잊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얼굴 없는' 마케팅
에 대한 적의가 결국은 TV, 라디오의 프로그램 '상품'을 만들어 팔아
먹지 못한 울화와  다름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꼴이  되었다. 이  
'울화'의 보복으로 KBS는 「Take Two」와 「Take Six」에 대한 방
송금지 조치를 내린다. 신문의  서면 인터뷰를 제외한  일체의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서태지의 입장이 단순한 '깜짝쇼'가 아니라  컴백 앨범
의 텍스트를 관통하는 준열한 입장임을   증명하는 데엔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영광과 오욕을 안겨준 브라운관에 대
한 중층적인 공격을 담은 노래를 이  앨범의 중심축에 놓았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태지스러운'기지는 바로 그 문제의 곡  「Take Two」를
프로모션 싱글로 지정했다는 것과 부클릿에 노래말을 담지 않음으로써
비록 짧은 기간이나마 방송을 '바보상자'로 만들어 버렸다는 점일 것이
다. 두 번째 시비의 표적은 삼십분이 채 되지  않는 앨범의 러닝 타임
과 이른바 '졸속 제작'론이다. 특히 임진모, 이무영 등 서구 대중음악을
주로 다루어 왔던평론가들이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고  나서자
서태지 지지자들은 컴퓨터 통신을 통해 처절한 반비판 여론을  형성하
는 양상을 보였다. 이들이 보기에 평론가들의 문제제기는 '서태지 죽이
기'식의 감정적 폭행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네 장의 정규  앨범
거개가 30여분 내외인데 왜 이번 앨범에 이르러 문제를 삼는가?  그리
고 열대여섯 곡씩 빼곡이 집어 넣기만 하면 좋은 앨범인가? 결국 중요
한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이 아닌가? 그렇다. 문제는 컨텍스트가 아니라
역시 앨범 안에 놓여 있는 텍스트의 고유한 가치이다. 하지만 두 평론
가들의 문제제기를 그렇게 간단하게 제쳐 놓을 수는 없다. 93-4년, LP
가 CD 포맷으로 이행하며 소프트웨어 가격이 두배 가량 오른 것은 그
저 단순한 아날로그-디지틀 포맷의 진화가 아니라 음반산업의 중추적
인 시장확대 전략의 결과였다. 그 대가로 음반산업은 수용자에게 보다
많은 '양'의 음악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그러나 LP나 CD보다 카세트
테이프 포맷이 훨씬 압도적인 점유율을 지닌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경
우 그와 같은 포맷의 차이성은 그리 심각한 화두로 다가오지 못했으며
더군다나 싱글 문화가 여전히 표류함으로써 음반 가격의 합리적인  설
정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아마도 앞의 두 평론가들은 이년 육개월만에
복귀하는 90년대의 대표  주자가 EP음반에  불과한 초라한(?) 규모로
정규 앨범 비용을 받으며 돌아왔다는 것에 대한 실망감을 강력히 피력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실망감의 근저에는 그토록 떠들썩했
던 화제성에 비해 이 앨범의 내용이 IMF와 함께 무너진  국내 음반시
장을 구원할 만한 획기적인 지표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가 집중적으로
파고든 록의 수준이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3집과 4집 이상의 지평을
열지 못했다는 평가가 잠복하고 있다.

내 마이크에 누가 껌을 붙여 놨어

과연 그러한가? 이 앨범의 노래와 연주는 더 이상 신선함이 없는 낡은
것인가? 아니, 어느 안티-태지적인 매니아의  말처럼 서태지라는 이름
이 아니었으면 만장도 팔리지 않을  것이라는 냉소가 정당한 것인가?
이 컴백 앨범의 처음이자 마지막 슬로건은 서태지 자신이 밝혔듯이 메
틀의 기조가 강한 얼터너티브다. 그는 90년대의 막바지에 이르러 서구
음악씬에서 완만한 퇴조의 피곤한 기색을 보이고있는 이 사양의 갈래
에 자신의 음악적 아이덴티티를 중간 결산하고자 했다. 서태지와 아이
들 시절 매 앨범마다의 장르 기획을  떠올려 볼 때 이번 컴백  앨범엔
새로운 물결인 테크노를 도입할 것이라는 예상은 크게 빗나갔고  기타
와 베이스, 드럼이라는 가장 고전적인 록 편성으로 (그것도 오로지 자
신의 힘만으로!) 돌아왔다. 여기에 '새로움'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
은 온당한 일이 아니다. 짧은 리프로  이루어진 오프닝 연주「Maya」
가 지나면 95년 4집의 「슬픈 아픔」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듯한 유장
하고깊은 울림을 간직한「Take One」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익살스
런 리프와 함께 이어지는 이번  앨범의 최대의 문제작「Take Two」.
이 노래의 전반부는 냉소적인 랩과  그것의 아래 위를 둘러싸고  있는
대위적인 기타 리프로 이루어진다. 이 노래의 구성은 불연속적이며 따
라서 항상적인 위태로움을 동반한다. 이 단번에 포착되지 않는 구성을
통해 이제는 홀로 된 이 90년대의 싱어송라이터는 저주의 주술을 읊조
리기 시작한다...깡통같은 자식들/내가 아무래도  그렇게 멍청할 것 같
냐/내 마이크에 누가 껌을 붙여놨어/진짜 좀 더럽게 좀 굴지마...경쾌함
과 둔중함, 밝음과 어두움, 순정적인 것과 악동적인 것이 어지러이  뒤
섞인 이 앨범은 기존의 앨범들에서 대중적 의사소통의 욕구를 거의 폭
력적으로 제거한 결과이다. 그것은 짧은 프레이즈를 꼴라쥬한 두 번째
간주곡 「Radio」로부터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Take Three」와
「Take Four」의 혼돈으로 가득한 굉음 코너에서 더욱 강화된 모습으
로 등장한다. 그는 이년 반의 시간을  소문의 아수라장에서 탈출해 철
저히 격리된 채로 보내는 삶을 선택했고,  스물 일곱이라는 만만치 않
은 연배에 들어섰다. 그의 결벽증은 그를 내면의 우물 속으로 끌고 들
어 갔으며 이제는 아이돌 스타의 거품을 걷고 한 사람의 아티스트로서
홀로서기를 시작한 것이다. 꼭 그만의 방식으로. 이것을 '신비화'를  이
용한 '얄팍한 상혼'으로 몰고 가려는 논리는 과연 누구의 것인가? 그의
지지자들에게 보내는 답례인「Take Five」조차도 지난 2집의「우리들
만의 추억」에 나르시시즘에 비하면 훨씬 성숙해 있으면서 훨씬  대자
적이다. 그는 이 위험한 컴백 앨범 내내 단  한 트랙도 여의도 방송국
의 PD들이 흔쾌히 선곡할 만한 순응적인 노래에 할애하지 않았다. 무
엇이 '상업적'인가? 그는 앨범 발매일 전에 단 한곡도 방송과 신문사에
제공하지 않으면서 십오만에 달하는 앨범 예약 판매라는 획기적인  마
케팅을 완성시켰다. 자신의 앨범을 팬들에게  먼저 전달하겠다는 것이
(배급을 맡은 삼성 측의 난맥으로 인해 배달  사고가 좀 났다지만) 뭐
가 그리 큰 난리일까? 아니 나아가 이미 불법 음반이 시장의 50퍼센트
가까이를 잠식한 복마전적인 상황에서 최소한 예약 판매분만큼은 마피
아 유통에서 보호하지 않았는가?  이걸 두고 '상업적'이라고  이른다면
그것은 너무 불행한 일이다.


쓰레기통에 처박힌 나

그의 컴백의 기조는 이미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산한  지 몇 달 뒤인,
음반의 사전심의가 폐지된 직후에 나왔던 싱글 「시대유감」원곡 버전
의 부클릿에서 이미 암시되었다. 그것은 시장을 지배하는 어둡고 집요
한 권력과 싸우는 것이다. ...더러운 '쓰레기통'에 처박힌 나. 위로 보이
는 칙칙한 회색 천장이 비웃으며 말했다. 쓸데없는 짓 하지마라.  튀지
마라....그는 자신의 솔로 1집으로 열 일곱살 때 섰던 비주류의  무대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그 시나위 시절부터  서태지와 아이들을 거치면서
단련한 홍소(哄笑)의 로큰롤을 자신의  음악의 뿌리로 정의했다. 그가
'판을 팔아먹기 위해' 이것저것 새로운 음악을 받아들여 포장만 입힌다
는 비난은 조용필더러 90년대에 이르러서 완전히 몰락했기 때문에  당
신은 트로트만 해야 한다고 윽박지르는  것만큼이나 모욕적이다. 그가
세계 록 음악사를 흥분시킬만한 독창적인 아티스트로 등재된 것은  명
백히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헤비 메탈과 사이키델릭, 펑크,  랩,
리듬앤블루스를 주유하면서90년대 한국 사회의 새로운 당대적 욕망을
견인하는데 성공을 거두었드며, 그의 시뮬라크르들의 속류적인 모방의
물결 속에서 수많은 수용자들로 하여금 거개의비주류 장르들을 청각적
인 경험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과 그의 동료들을 스타덤으로
올려놓은 바로 그 자본과 거대매체를 배신하면서 상처로 얼룩진  대중
음악가의 자본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주류 시장의 영역 안에서  해
맑은 미소와 섬뜩한 기획 마인드로 획득해  내었다. 이것이 우연의 일
치처럼 거의 비슷한 시기에 탈세 혐의로 9시 뉴스에 등장한  김건모와
신승훈 같은 빅스타와의 차이점이다. 김건모와 신승훈 그리고 HOT의
광범한 팬들과는 다른 서태지의 지지자들은 이들의 모든 움직임  속에
서 현실 탈출의 해방감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환상을 동시에 경험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앨범은 그러한 욕망을 대리  충
족시켜주는 육체적 요소가 강했다면,  악마주의 파동의 진원이  된 세
번째 앨범은 거기에다 직설적인 현실 비판이라는 무기를 추가로  탑재
했으며, 공윤의 검열 파동과 표절 파동을 동시에 불러 일으킨 네 번째
앨범에 이르러 하나의 문화적인  전선을 형성하게 했다.  그와 동시에
이 댄싱그룹의 리더는 이 포맷의 내부적 한계를 절감했으며  적대자들
의 완강한 프레싱 앞에서 후퇴와 침묵을 결심했다.

욕망의 대리충족자로서 서태지

90년대의 작은 전복은 그렇게 4년만에 제1막을 내렸지만 그의  세례를
받은 열혈 지지자들은 은퇴선언 이후에도 기념사업회 조직을 통해  그
가 분만한 문제항들을 재생산하는 놀라운 지속력을 보인다. 이 지지층
자들은 그들의 우상이 표표히 무대에서 사라진 뒤에도 앞서 열거한 90
년대의 수퍼스타들의추종세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전투적
인 단결력으로 여론의 형성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왔다. 이들에게 서태
지라는 화두는 더 이상 성공한 엔터테이너가  아니다. 이 화두는 자신
들을 누르고 있는 모든 억압에  대한 저항의 이름이며 이들의  내면을
가로지르고 있는 발산의 욕망을 응축시킨 이름이고, 나아가 앞의 세대
와 자신의 세대를 확연히 구별짓는 정체성의 이름이기도 하다. 서태지
라는 화두는 이렇게 제도와 욕망과 세대의 불연속의 문지방을 밟고 서
있다. 그가 「난 알아요」와「환상속의 그대」를 앞세워 홀연히 나타
났을 때 새로운 감수성을 갈급하던 90년대의 십대들은 순식간에  몰표
를 몰아주며 자신들의 문화적 대리인으로 이들을 지목했다. 그러나 이
때만 하더라도 이들의 존재는 기성세대들에게는 그저 눈쌀 찌푸려지는
정도인, 수없이 명멸해 간 대중문화의 단속적인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
다. 이 첨단의 시대에 그가 숱하게  명멸해 간 엔터테이너들과 구별되
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앨범이라는 하나의 텍스트 속에 극단적인 양면
성의 대립을 함축해 왔다는데  있다. 그는 성공을  유인하는 대중적인
취향과 독자적인 목소리를 양립시키는데  아무런 장애를 느끼지  않는
다. 그리하여 그는 새로운 유행을 쫓는 스타 추종 그룹과 자신의 수용
행위를 분석적으로 체계화하려는 매니아 그룹 양쪽으로부터 지지를 받
는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즐겨 감행한다. 데뷔 앨범「환상 속의 그대」
를 통해  묵시록적으로 읊어지는  랩을 보라.  이 노래가   있음으로써
「난 알아요」의 세속적 성공의 양지는 고뇌의  그늘을 얻는다. 두 번
째 앨범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들만의 추억」이나「너에게」같은
자화자찬격의 통속적인 오만으로 끝나지 않게 하는「하여가」와「죽음
의 늪」이 균형추 역할을 한다.  이 선연한 대비감은 세  번째 앨범에
이르러서는 더욱 깊은 뉘앙스를 분만하게 되는데, 흔히들 통일과 교육
이라는 소재를 다룬 것으로 스치고 지나가기 일쑤인 이 앨범의 진면목
은 「발해를 꿈꾸며」나「교실 이데아」가 아니라 혼돈에 빠진 주체를
파괴적으로 형상화하는 「지킬 박사와 하드」와「내 맘이야」이다. 이
양면성의 대립은 수용자들로 하여금 다중적인 해석을 불러 일으킴으로
써 자신의 음악이 단지 한번 듣고 버리는 소모재가 아니라 계속  파고
들만한 그런 것임을 인식하게 하는 데  성공한다. 이 텍스트가 분만하
는 유혹은 레게 파마 파동에서 악마주의 파문, 표절 시비와 공윤 심의
거부 파문에 이르는 텍스트 밖의 해프닝과 샌드위치를 이루며 그 파급
력을 증폭시켰다. 이 일련의  과정이 의도된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이 자리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만 중요한 것은 서태지와 두 명의
동료들이 연속적으로 이와 같은 전선을 형성함으로써 단지 '주어진' 음
악만을 향유하던 어린 수용자들로 하여금 희미하긴 하지만 세상의  혼
돈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하는 몸부림을  격발시켰다는
점이다. 바로 이 순간은 트로트 이상의  아성에 대항해 통기타라는 청
년문화의 문법을 성립시켰던 저 70년대의 작은 반란과 네트워크가  주
도하는 전반적인 매너리즘에 저항했던 80년대 중반의 이른바 언더그라
운드의 혁명에 뒤이은 90년대의 전복인 것이다.

서태지의 비상


그의 디스코그래피는 결국 소란스러웠던  이 세기말 한국  대중문화가
요구한 욕망의 디스코그래피이다. 하지만 그는  이번의 솔로 앨범에서
바로 그러한 자신의 이미지를 폐기하고새로운 세기를 준비하려 한다.
그가 준비한 메뉴는 어쩌면 가장 고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정공법적인
록의 텍스트...이제 난 또 다시 일어서는  거야/날 힘있게 다시 만들거
야/머나먼 길을 떠나 내가 찾은 곳은  낯설은 세상이었지/거리를 하루
종일 걸어다녀 내겐 아무 관심도 없어/굉장한  일이었어/모든 건 달라
지고 예전의 내 모습이 돌아오는 것 같았어/이제 난 또 가시 일어서는
거야/날 힘있게 다시 만들거야...이  앨범에서 진정으로 추천하고 싶은
지점은 마지막 트랙인「Take  Six」단조롭지만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드럼의 홀 앰비언스 속에서 우리는 질주하는 펑크의 세련된 제안을 맞
이한다. 이 에너지는 그가 이 땅에서 떠나 있을 동안에 크라잉 너트와
노 브레인이 지하의 작은 클럽에서 온몸으로 즐겁게 쏘아 올린 불꽃이
다. 오버 그라운드의 거물에 의한 펑크라고 해서 간계가 숨어 있는 것
은 아니다. 이 트랙이야말로 서태지가 이년 육개월만에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겠다는 가장 확실한 확신인 것이다. 다시 한번 반복하지만 그는
이 앨범을 통해 모든 설명적인 기표들을  제거했다. 서태지는 다시 기
타를 든 한명의 록 청년으로 돌아왔으며 그의 앨범의 재킷이 암시하고
「Take Six」에서 노래하듯이 어떻게 날아오를 것인지를 앞으로 계속
내기를 걸어갈 것이다. 그것을 관람하는 것이 행복하지 않을지는 모르
나 적어도 인형들의 사육제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보다는 덜 불행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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