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문화의 아이콘 서태지가 21세기 벽두에 드디어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그 존재감만큼의 영향력을 흩뿌리며 제자리에 돌아온 서태지는 6집 <울트라매니아>를 발매하고 자신을 지켜보는 많은 이들에게 차분히 자신이 준비해온 것들을 하나씩 묵묵히보여주었다.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입국에서부터 컴백공연, 기자회견, 사전녹화, 콘서트로 이어지는 2000년 후반 숨가쁜 5개월동안 그는 열심히 말하고 있다. 왜 다시 돌아왔는지를.

 

 

 

 

저도 많이 기다렸습니다  ▶ 메일전문보기

서태지는 귀국 보름여를 앞두고 인터넷 팬사이트들(서기회, 태지존, 서사회..)을 통해 활동을 재개함을 알렸다. 언론이나 기타 공식매체를 통하지 않고 팬들에게 직접적으로컴백소식을 알린 서태지의 팬들에 대한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 창출이라는 활동스타일은 6집 활동내내 일관적으로 고수되었다.
 

4년7개월만의 컴백  ▶ 서태지육성 인사말

2000년 8월 31일 김포공항은 "서태지라는 거대뮤지션의 4년7개월만의 컴백"이라는 이슈와 4년7개월의 공백에도 불구 변함없이 기다려온 팬들의 환호, 그 모두를 취재하러 나온 수백의 취재진 으로 하루종일 들석였고, 방송3사뉴스와 모든 언론매체의 탑기사로 장식될만큼 극적인 것이었다.


하드코어로 입성 - 9월9일 컴백쇼


가 6집에서 선보인 음악은 강력한 핌프록.서태지음악의 음악적 근원이 락이고 힙합의 요소가 가미된 랩메틀이었음을상기해볼 때 6집 하드코어, 핌프록넘버는 결코 낯선 것이 아니라 1집부터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강력한 하드코어사운드안에서도 뽑아져나오는 서태지만의 리듬과 가락,중독성 라임등은 과연 서태지임을 느끼게 한다.
귀국후 어떤 언론접촉도 없이 컴백무대에만 전념하던 서태지와 팬들과의 첫만남은
컴백쇼에서 이루어졌다.
신곡 하드코어넘버들과 5집수록곡 일부,교실이데아등 총 7곡을 선보였고, 그 충격적 음악변신앞에 팬들은 환호했다.컴백쇼는 컨서트가 아닌 티비방영목적의 사전녹화의 형식으로 제작되어인터뷰와,영상, 공연실황을 함께 어울렀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MR로 공연이 진행된 것. 밴드연습부족이라는 한계상황에서 최선의 무대를 연출하고자했던 그의 선택은 그의 활동스타일상 당연한 귀결이었을지 모르나 ,
이후 일부 락커들의 끈질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후 모든 서태지밴드공연은 올 라이브였다.

공식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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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먼저 말하겠다. 세인들의 관심과 일부비판에도 불구, 서태지는 컴백공연후에야공식기자회견을 가졌다. 국내활동 재개를 위해 그가 준비해왔던 많은 생각과 신념들, 활동방향에 대한 여러 힌트와 암시...때론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서태지식 방송양식_사전녹화


방송국의 라이브환경 미비점을 극복하고 생중계의 문제점을 보완하여 새로운 방송양식의 창출하려한 서태지식 대안은 "사전녹화"방식 .
하드코어연출에 익숙지 않은 방송관계자 대신 서태지 본인이 직접 무대,음향, 연출,편집 전반을 관할함으로서 아직은 생소한 개념인 사전녹화시스템을 선보여, 생생한 락사운드를 안방에 제공했다. 한국에서는 처음 도입한 사전녹화 방식은 기존시스템의 직능적 불만과 타뮤지션의 특혜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Ready For Slam? Ready For Crazy?  

서태지밴드 라이브콘서트 태지의_화
최상의 사운드, 최고의 연출, 열정적인 무대매너, 준비된 팬들은 최상의 무대를 만들어냈다.서태지는 콘서트를 통해 락무대가 가질 수 있는 국내최고의 사운드를 제공했고, 팬들은 열정적인 슬램으로 그에 보답했다.  대경성, 탱크, ㄱ나니, 인터넷전쟁으로 이어지는 주옥같은 하드코어넘버들과, 공윤폐지후 처음으로 무대에서 불리워진
<시대유감> , 락넘버임에도 처음으로 라이브로 울려퍼진 <필승>.. 팬에게나 뮤지션서태지에게나 여러면에서 '한'을 푸는 축제였다.

  
2000년 태지 그가 남긴것들..

1. 팬,뮤지션간의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창출

컴백발표, 표배분, 인터넷생중계, 공연홍보, 티벳배분등 전 과정에 어떤 언론매체도 통하지 않고 팬들과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추구했다.이러한 독자노선은 한편, 매체를 통한 다수대중들과의 교류가 상당부분 차단됨으로써 '매니아'층이 더 공고히 형성되게 하였고, 다른한편, 반대급부로 언론의 소외와 반발을 불러일으켜 한밤의 TV연예등의 편파보도를 낳았다.
한밤의 TV연예의 불공정, 편파보도는 팬 전반적인

 

 

 

 

분노를 일으켜 이후 연예프로그램 공정보도를 촉구하는 태지팬들의 대중적 저항으로 이어져 한밤 광고주 항의운동과 백서발간으로 이어졌다. 서태지팬들의 한밤반대운동은, 팬덤운동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팬덤과 문화권력' '시청자운동과 팬덤'등의 여러 화두를 던져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밤의 TV연예 광고주항의운동 / 보고서    [핫이슈]SBS '한밤'에 대한 '태지매니아'의 입장   

2. 새로운 방송시스템의 제시

'사전녹화'라는 진보적 시스템을 도입, 방송사의 라이브공연환경미비와 생중계의 문제점들을 보완하여 안정적인 라이브를 제공할 수 있는 '사전녹화'방식의 고수는..티비음악프로그램에 대한 서태지식의 제안이고 솔선수범이었다.이는 기존시스템의 견제와 타 뮤지션의 서태지 특혜논쟁으로 그 본질을 살려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으나  여러 가지 좋은 선례들을 남겼다. 스탠딩방청문화의 정착, 트라이포트홀, 메사등 좋은 라이브공연장의 소개, 일부 방송사의 사전녹화제 도입등이  그러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3. 새로운 문화조류의 형성 - 달라진 공연문화, 팬문화
 

테크노일색이던 클럽문화가 헤드뱅잉,슬램등 핌프록,하드코어 일색으로 변하였고,패션,모자,머리,액세서리,신발유행등.. 여전히 서태지는 문화리더로서의 영향력을 과시했다 .또한 의자에 앉아 풍선을 흔들던 주류공연문화에서도 적극적으로 함께 즐기는스탠딩,헤드뱅잉문화가 도입된 점도 작은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서태지팬들은 특히.. 많은 변화를 겪었다. 노란손수건을 흔들며 환호했던 컴백쇼의 태지팬들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격렬하게 헤드뱅잉에 온몸을 맡겨 슬램을 즐기는 락매니아로의 발전이 겨우 네달만에 이루어졌다. 서태지팬들은 더 나아가서 스스로 여러 공연을 기획하고 즐기는 공연문화의 주체자로까지 발전하였다.
그것은 ..POWER OF TAIJI, POWER OF TAIJIMANIA .

4. 언더음악의 소개, 대중화의 계기

레이니썬, 크로우, 디아블로, 45RPM 코어매거진.. 서태지와 실력파 언더뮤지션들이 함께 했던 하드코어2000공연 ,
그리고 태지의_화 공연 오프닝밴드로 그들이 섬으로써 언더밴드들이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태지팬의 수가 그만큼 많다는 반증이기도 하겠다. 이후 하이틴공연에도 락밴드들의 출연이 잦아졌고, 태지팬자체공연에도 많은 밴드들이 함께 즐기고 있다. 나머지는... 모두의 몫이다.  


- 주요활동일지 -

ㆍ8.11. 서태지, 인터넷을 통해 국내활동컴백 발표
ㆍ8.23. "괴수대백과사전" (음반사) 설립계획 표명
ㆍ8.29. 김포공항을 통해 4년7개월만에 한국 귀국
ㆍ9. 8  6집앨범 "울트라매니아" 발매
ㆍ9. 9  컴백쇼-올림픽펜싱경기장
ㆍ9.12  컴백 공식 기자회견
ㆍ9.16  수퍼엠파이어 콘서트 참가
ㆍ10.17  세계평화음악제 참가- 잠실종합운동장
ㆍ11.24  M.Net 뮤직비디오 <울트라매니아> 록부문수상
ㆍ11.24  인터넷생방송- 아주 특별한 만남
ㆍ11.25  하드코어2000 참가-이화여대 대강당
ㆍ12..23,24,25,30,31 서태지밴드 라이브콘서트< 태지의_화> KBS 88체육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