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예인,방송,신문,시청자간의 관계에 대한  재조명 ]

 

1) 연예인의 인권과 시청자의 알 권리

파파라치식의 보도행태의 끝에 면죄부처럼 붙는 말이 바로 시청자의 알권리이다.
공중파연예정보프로와 옐로페이퍼는 달라야한다. 연예인사생활에 대한 호기심과 관음증적 본능의 자극은 알권리와는 별개의 문제이며 오히려 올바른 대중문화를 제공하고 이끄는 역할이 공중파연예정보프로의 몫이다. 개인의 사생활과 인권은 어느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보호되고 존중되어야한다는 원칙을 방송이 놓쳐서는 안된다.


2). 언론/방송의 자유(?)와 시청자의 주권의식

서태지팬들의 광고주항의운동을 보도하면서 일부언론은 언론의 자유에 대한 도전이라고 했다. 방송과 언론 시청간의 역관계를 보라. 수번의 자체경고고차 부질없이 같은 기조로 7년을 승승장구해온 한밤과같은 프로를 보라. 거의 모든 권력은 언론과 방송에 있어왔고 지금도 그렇다. 현재 우리 시청자들은 오히려 매체의비평과 프로그램을 보는머리보다는 단순히 쳐다보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국의 방송, 언론, 시청자의 관계속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시청자의 주체적 참여이다. 페이퍼언론은 방송을 취사선택하여 거기에 중요성과 의미를 부여하여 사회적 의제를 설정하는 보도와 평론이라는 저널리즘을 통해서 그들의 권력을 행사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언론을 통해서 사건, 사고를 접하고 인물들을 접하게 된다. 따라서 사람들이 파악한 현실은 언론에 의해 정의되거나 규정된 현실일 따름이다. 이처럼 언론은 가치판단의 기준역할을 하게 되므로 언론이 지나치게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을 오히려 경계해야하는 것이다. 언론의 자정과 그에 대한 경계는 결국 수용당사자인 시청자/시민이 변화시켜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집단적인 흐름이라고 해서 그것이 하나의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고 해서 언론에 대한 도전이라는 말을 거의 모든 방송과 언론매체에서 한 입으로 하고 있다. 과연 어디에 문제가 더 있는 것인가.  

3) 방송사자체내의 옵부즈맨프로의 한계  - 실효성있는 소통자로서의 언로 부족

방송내용에 대한 항의요구는 방송사 내부의 옵부즈맨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방송사측이 방송에서 시청자의 주체성을 인식하지 않는 현실은 옵부즈맨 프로그램이 진정 수용자들의 의사를 제대로 얼마나 전달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게 한다. 방송위의 제재조치도 결정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서태지팬들의 집단적인 시청자운동을 팬덤권력으로만 치부하고 항의정도에서 그쳐야한다는 한결같은 언론의 사설들은  이런 현실을 더욱 암담하게 만들고 있다.

4). 팬덤의 권력? NO! 언론의 권력 YES!

팬들이 광고주에 특정프로에 대한 스폰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광고주가 이를 받아들이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 일제히 언론은 팬덤의 권력화를 제일먼저 언급하면서 한술 더 떠 연예저널리즘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는 비판까지를 가하고 있다. 모언론은 언론탄압을 자행했던 5공화국의 권력의 작태와 같지않느냐는 궤변을 들이밀기도 했다.
우리는 그간 한국사회에서 무수한 사례를 통해서 '언론권력/문화권력의 집중' 이 위험수위에 다달았음을 보아왔고 그것을 제대로 바꿔낼 올바른 시청자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해왔다. 우리는 서태지팬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의 성숙한 시민이다. 이 운동을 전개하는 사람은 사회에서 건전한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20-30대가 대부분이다. 냉정히 우리 한국사회를 바라보자.
권력이 과연 누구에게 집중되어 있는가? 수많은 방송권력의 횡포에는 조용하던 언론이 연예정보프로그램의 질적인 문제를 제기하며 논리적이고 건전한 운동을 벌이는 이 전례없는 시청자운동에 대해 단지 특정팬들이 진행했다는 점만을 부각시켜  언론탄압 운운하는 것은 대체 기자의 어떤 논리에서 나오는 말인가. 이는 언론권력 횡포의 연장선상에 다름아니다.


5) 팬덤의 권력화는 오히려 바람직하다.

문제는 오히려 언론권력을 제어하고 견제할만한 상대세력이 없다는 것에 있다.
최악의 프로라는 수치스러운 전적을 갖고도 승승장구하는 한밤의 예만 보더라도 그점을 견제하고 시청자들의 의견을 소통시킬 어떤 장치가 없다는 것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팬덤도 권력을 가져야한다. 이는 권리행사를 용이하게 도와주는 의미에서의 정당한 권력을 의미한다. 여기에서의 권력은 사회구조의 유지가 아닌, 사회구조의 개편을 이끌어내는 대안으로서의 권력이다. 과거 총선연대는 정치권력에 맞선 시민권력의 힘을 보여준 사례다. 팬덤도 마찬가지!
민주사회에서 권력의 집중은 대안세력의 형성에서만이 견제될 수 있다. 국가권력에 대한 사회단체의 활동이 그렇고 자본자들에 대한 노동자들의 건전한 조합활동이 그렇다.  

한밤광고주들은 한밤보도관행에 문제제기를 하는 팬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광고중단을 결정했다.  이런 일련의 상황들은  새로운 시청자운동의 모범적 사례를 제시해주었음은 물론 팬덤의 권력이 대안권력으로서 작용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이런 팬덤의 권력 또한 설득력없는 강제성에 휘말리지 않도록, 건강한 대안을 제시할 때에만 비로서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